영국 캠프힐 봉사활동 기행기
브런치에서도 유명한 글인 천국은 아니지만 살만한을 읽었습니다.
영국 캠프힐 봉사활동을 다녀온 저자의 생생한 후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책이죠.
북아일랜드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시골의 작은 공동체 "캠프힐"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저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고자 캠프힐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곳을 선택하였다. 영어도 서툴었던 그녀는 처음에는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기에 적응에 매우 고생을 했다. 물론 그곳에 한국인 봉사자도 있었기에 조금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분명 이겨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니까 우선은 여기까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녀는 애써 밝고 쾌활하고 사교적으로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천천히 마음을 열면서 커뮤니티에 스며드는 방법을 택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녀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캠프힐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의 수발을 들으며 각자가 맡은 일도 맡아서 한다. 그녀는 빵집을 선택했고, 쉬는 시간에는 선택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고비로 약간의 용돈이 주어지는 곳이었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이스라엘 키부츠와 많이 닮은 점이 보였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환경으로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캠프힐은 정말 시골이다. 번화가를 갈려면 꽤 먼 거리를 가야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와야 했다.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가능한 커뮤니티였기에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만큼 가혹한 곳이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이곳에 오면 모든 고민거리가 자연히 해결될 줄 알았다. 대책 없는 긍정이었다. 혹은 그저 당장의 처지를 벗어나는데만 혈안이 되어 나 자신을 속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따끔한 충고는 옳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음을 걱정하고 또 두려워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예전보다 우리가 더 많은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혼자 사색과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저자가 그려졌다. 왜냐하면, 내가 세계여행을 할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나의 미래가 저절로 그려질 줄 알았고 현실의 고민과 문제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고민에 답을 하지 못했고, 여행을 끝나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 때문에 오히려 여행이 더욱 하기 힘들었다. 그녀 역시 캠프힐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사색을 했을까.
열일곱 혹은 열아홉.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흡수하는 나이인 그 친구들을 곧장 대학을 가리지 않고 갭이어(Gap Year)를 보내는 중이었다. 잠시 학업을 멈추고 여행, 유학, 자원봉사 중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경험험을 쌓는 시간인 갭이어를 나는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세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여행 중 만난 외국 친구들의 나이가 매우 어렸다는 것이다. 남녀 가리지 않고 저마다 자기 키만 한 배낭을 메고 다니던 외국 친구들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만났던 영국 친구는 19살이었는데 대학 들어가기 전 1년 동안 갭이어 기간을 보내면서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보는 갭이어는 지금의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 번도 자신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와 달리 나는 속내를 감추고 숨기는데 늘 골몰했다. 스스로를 안티 소셜이라 비꼬는 그 당당함이 이상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미그다를 더욱 이해하고 싶어 졌다.
서둘러 다가오면 뒷걸음치는 사람, 가끔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 고독한 시간만큼 함께 하는 순간 또한 소중히 여기는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조의 말을 들어줄 법도 한데 나이 어린 안드레아의 당돌한 말투가 별안간 불편해졌다.
나야말로 꼰대가 된 것일까?
조와 안드레아의 언쟁은 공정했다. 두 사람은 연극 일정을 두고 서로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빈정이 상한 사람은 뜬금없게도 제삼자인 나였다.
이 문장이 참 공감이 갔다. 나이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나이를 무시하는 일은 불편하게 비추어진다. 두 사람은 똑같은 사람과 사람으로서 언쟁을 할 뿐인데도 말이다. 나 역시 여행을 다니면서 할아버지와 새파랗게 어린 친구와의 언쟁에 불쾌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문화적인 차이이지만,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건 지금의 나는 1년 전의 나와 분명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은 여전히 바쁘고 치열할 테지만, 달라진 나는 그곳에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지만, 그럼에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결국 그 때문이었다.
저자는 1년이 지나고, 캠프힐을 나서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나 역시 조금이나마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여행 막바지 여행이 더 이상 여행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그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그것이 내가 끌어안고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저 여행일 뿐,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참 많이 되었다. 겉으로는 쾌활해 보여도 내성적인 나 역시 혼자 여행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함께 떠올랐다. 캠프힐 봉사활동을 통해서 발달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주었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치료받고 온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