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고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책 또는 영화를 보고 읽는 것을 권장합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세상에나
췌장을 먹고 싶다니! 스릴러나 공포소설인가 싶었는데, 표지는 러블리한 벚꽃에 남녀가 있다!
가질 수 없다면 먹어버리겠어!! 이런 느낌인가?
이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저자의 인터뷰에서 웹소설 특성상 독자들에게 튀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자극적으로 지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사랑이야기랑은 조금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제목이네요.
책이 먼저 나오고 일본에서 대박이 나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영화가 더 익숙하신 분들도 있으시겠네요. 누군가는 뻔한 일본식 순정 이야기라고 하지만, 저는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온 이야기입니다.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아싸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과 영화를 모두 보고 느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1.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의미
자신의 아픈 부위와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게 된다는 옛이야기를 빌려 왔습니다. (실제로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좀 더 의미를 확대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아픈 부위를 먹으면 영원히 함께 하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사랑해.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랑고백의 말이죠. 오오오
주인공은 마지막에 그 어떤 말보다 이 한마디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저 단순히 자극을 위한 제목으로 생각했지만, 긴 여운이 남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저는 막 울었어요 ㅠㅠ )
2. 죽는다는 결말로 시작
반전으로 연인이 죽게 되는 시나리오가 일반적이지만, 처음부터 사쿠라가 죽는 병에 걸렸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연인이 죽는 건 참 슬프죠.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아! 일부러 처음부터 죽는다고 시작했구나!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상대방이 죽어서 슬픈 것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중점이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쿠라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웃음으로 가득한 아이입니다.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일상이 파괴되는 것이 두려움이 더욱 웃게 만들었죠. 그런데 남자 주인공(일부러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남주라고 쓸게요.)을 만나게 됩니다. 남주는 자신만의 영역만 신경 쓸 뿐. 남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싸임에도 인싸인 그녀가 끌렸던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 친구라면 내가 죽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니까. 이 친구 앞에서는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3.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가린 이유.
책과 영화에서는 계속 oo 한 클래스메이트로 불려집니다. 이름은 나중에 가서야 밝혀지죠. 처음에는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름을 감추었지? 하지만, 이름에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 행위가 특별한 것이죠. 영화에서 사쿠라는 남자 주인공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주가 나를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나를 연인이나 친구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싫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친구라면 나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어도 내가 슬퍼지지 않고, 너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가장 절친인 쿄코에게는 끝까지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멋진 일상이 망쳐질까 봐. 그러나 남주는 병을 알고 있어도 전혀 일상이 무너지지 않으니까.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계속 가린 이유는 나의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에 이름이 공개되는 이유는 그 존재가 이제는 특별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4. 사쿠라. 벚꽃의 의미
사쿠라는 벚꽃입니다. 일본에서는 흔한 이름이지만, 주인공의 이름으로 지은 것은 아무래도 벚꽃이 지닌 특징 때문이 아닐까요. 3,4월에 가장 화려하게 피고, 짧은 순간 강렬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이내 져버리는 꽃인 사쿠라. 그래서 여주의 이름이 사쿠라가 아닌가 싶네요. 배경도 벚꽃이 계속 등장하고요. 영화에서 가장 늦게 까지 있는 벚꽃을 찾아갑니다. 이미 6월이니, 벚꽃이 져도 한 참 전에 졌을 텐데.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여행의 장소는 마지막까지 펴있는 벚꽃을 보러 가는 것이죠. 사쿠라의 병은 이미 시기가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쿄코와 남주가 선사한 멋진 일상이 사쿠라를 마지막까지 필 수 있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참고로 남자 주인공 이름도 벚꽃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5. 죽음의 반전
우리는 처음부터 사쿠라가 병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쿠라가 병으로 마지막 엔딩을 장식할 것이라 생각했죠. 아마도 반전을 꾀한 것은 이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쿠라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묻지 마 살인마에 의해 살인을 당하게 되죠. 이건 무슨 얼렁뚱땅한 소리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의미를 붙이자면, 남주는 계속 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으로 인해 끝나게 될 일상만을 생각하죠. 즉,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천천히 몇 시 몇 분에 온다고 예고하는 것이 아닌 당장 오늘이, 내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죠.
6. 남주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
남자 주인공은 아싸입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 속에서 굳이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타인과 관계 맺지 않는 사람. 내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타인도 나에게 관심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초반에는 남주가 접근하는 사쿠라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로 인해 이지메도 당하게 되죠. 그런 남주가 나중에는 타인의 사랑은 받는 사람. 사랑을 주는 사람.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사쿠라가 계속해서 쿄코와 친해졌으면 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나오는 것도 그렇죠. 타인과 교류했으면 하는 바람인 것입니다. 책에서는 쿄코와 친구가 되고, 함께 사쿠라를 만나러 가지만 영화에서는 12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보듯이 사쿠라는 남주를 만나서 항상 감추고만 있었던 자신을 가면 없이 내보일 수 있게 되었고, 남주는 사쿠라 덕분에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주의 성장을 볼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네요.
사쿠라의 집에서 어머니에게 "잠시 울어도 되겠습니까?" 하는 대목이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개인적으로 남주에게 많이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남주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나 역시 타인의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툽니다. 공감을 잘 하지 못하고, 타인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남주에 감정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
이 소설은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특히 관계를 맺는 사회성에 대한 의미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가 아닌가 싶네요. 우리는 혼자 세상을 사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와 마음과 마음을 통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누군가를 안아주고 누군가를 위해 울어준다. 함께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쿠라가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죠.
내가 중요했고, 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저에게 사쿠라는 그만 혼자 놀고 나랑 같이 놀자.라고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