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읽고
나의 인생을 굳이 나누자면 군대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군대를 가기 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말 잉여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게임으로 보내거나 친구들과 축구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군대를 다녀오고 본격적으로 나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내가 잘하는 건 뭐지?
23살이 되어서야 이런 고민을 하다니. 더 웃긴 것은 아무리 고민해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해보았다. 알바도 해보고, 대외활동도 해보고, 봉사활동도 나가보았다. 그중에 블로그와 대외활동에 심취해 있었다.
돈도 한 푼 안주는 대외활동에 무슨 큰 의의를 뒀는지. 당시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돌아오는 것은 좋은 경험. 나중에 이력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결과였다. 실제로 취업을 할 때 전혀 쓰지 못했다. 무언가 열심히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질문이 모호했으니 답도 모호했나 보다.
어릴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판타지 소설을 썼다. 인터넷 상에서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인기도 있었다. 친구들이 재밌다고 계속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작가를 꿈꾸며 자라왔다.
지금도 물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가능만 하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의지가 강하지 못했다. 참으로 부러웠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나는 부러웠다. 겁이 많았다. 그 모든 리스크를 지고 가기에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확신도 없었다.
지금도 다시 묻곤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북 저널리즘의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읽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개인적 생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감독 지망생이지만 사실상 백수다.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 아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먹고나시즘때문에 알바나 부업은 필수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준성: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화를 하고 있어서, 꿈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그래서 저는 영화를 빼면 아마 병신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7화 -
여기 등장하는 감독 지망생들은 열정 아니,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지라도 지금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화가 났다. 물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이들의 시간은 비생산적으로 보여도 생산적이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한 가지에 몰두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령 감독으로서 유명해지지 못할지라도 결코 헛 된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외감마저 든다.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의지를 가지고 꿈을 향해 걷는 이들의 시간은 결코 비생산적이지 않다고 들린다.
다르게 생각하면, 의지도 없이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최근 나의 지인이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다시 재취업을 시도하던 중 내린 결정이었다. 다름 아닌 고용안정성 때문이었다. 이 불안한 세상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인이 한 말이 가슴에 많이 남았다.
"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다면 그것을 했을 텐데, 내가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 안정적이라도 해야지. "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가 아닐까. 비단 나의 문제, 지인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 번도 진지하게 나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운 적도 없었다.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분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응원하고 싶다. 괜스레 나도 힘이 나고 동기부여되는 기분이다. 그들의 행보에 박수를 쳐주며 훗날 극장에서 멋진 영화로 만나고 싶었다.
다른 마음로 깊은 좌절감도 있었다.
나도 한 가지 몰두하며 열정과 의지를 다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좋으니 작가에 몰두하면 되지 않으냐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리스크를 짊어질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았고 나의 재능에 확신도 없다. 글 쓰는 것만큼 다른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인들은 항상 나에게 넓고 얕은 지식이라 했다. 많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한 분야에 깊이 있게 몰두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 들이 부럽고 나 자신에게 좌절감도 들었다.
나도 열과 성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좋겠다.
말단 직원으로 일해도 견딜 수 있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