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홀릭 Oct 15. 2021

차장, 부장도 아닌 그냥 직원으로

나이 마흔 스타트업 적응기 4

지금의 회사에 오기 직전 나의 직급은 부장이었다. '부장'이라는 직급이 주는 묵직함과 압박감은 상당했다. 회사에서 부장이란 존재는 뭐랄까, 더 이상 올라갈 곳은 없고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팀장이 아니었지만 매출에 대한 부담도, 리더십에 대한 부담도 꽤 컸던 것 같다. 


지금의 스타트업은 직급이 없고 모두가 동등한 체계다. 호칭은 영어 이름을 쓰는데 "Peter 회의 가능하신가요?"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이름을 부른다. 심지어 대표 포함해서! 처음엔 이 영어 호칭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편하다. 이렇게 직급 없는 조직이 확실히 좋은 점은 서로 나이나 경력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되고, 문화가 수평적이라는 것이다. 회의에서도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반면, 조직에서 상하 체계가 없다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팀장이나 파트장이 의사결정을 해주는 것이 아니고, 각 프로젝트 담당자들끼리 계속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차근차근 결론을 내야해서, 속도가 더딜때가 종종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방식도 되도록 본인이 하고 싶은 업무를 선택하도록 존중해주는 편이다. 늘 탑다운 방식의 조직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이런 프로세스에 대해 답답함이 컸다. 위에서 '너는 이거 해라, 언제까지 해라' 딱딱 정해주면 편할텐데, 일이 지지부진 진도가 안나가는 느낌이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마라톤처럼 장기 레이스를 뛰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채찍질하며 독촉하고 조이면 단기적으로는 큰 성과가 날 수 있지만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다보니, 책임감도 더 생기고 일도 재미있어졌다. 재밌게 일한다는 기분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꽤나 오래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이제 와서 '일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김지수 작가의 인터뷰집 '일터의 문장들' 중에서 아티스트 백현진님과의 인터뷰 글에 있던 문장이 넘 좋아 함께 기록해둔다. 나도 이런 감각으로 일을 지속해 갈 수 있기를.


"무리하지 않으며 즐겁게 지속하는 일, 발전과 완성의 강박으로 나도 남도 박해하지 않고, 오직 변화와 확장을 도모하는 예술가의 삶. 그 모습이 저성장의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갈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일터의 문장들 - 제 2장 무경계 예술가 백현진 인터뷰 중 발췌 


이전 03화 Mac은 처음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