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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홀릭 Oct 18. 2021

스타트업에 없는 것?

나이 마흔 스타트업 적응기 5

스타트업에 입사한 지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갈 즈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할 때가 되었는데 이상하네...

왜 없지?

스타트업에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보고서'다.


그간 회사에서 정말 하기 싫은 업무가 있었는데 바로 '보고서 작성'이었다. 주간 보고, 월간 보고, 분기 보고. 그리고 매년 10월 중순 경이 되면 그 때부터는 연간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팀 전체가 분주했다. 거의 실무를 내려놓고 보고서 작업에만 매달려야 할 지경이었다. 

문득 보고서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심플하다.

보고서 - 업무 현황이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3%B4%EA%B3%A0%EC%84%9C

그런데 이 심플한 '보고서'가 직급 체계를 갖춘 대기업으로 갈수록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 되고 만다. 팀원은 팀장의 입맛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한다. 신입 사원의 경우 팀장이 원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1단계 팀장 미션을 통과해도 줄줄이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본부장의 의견에 따라 수십번의 보고서 수정, 보완 작업을 진행한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대표 보고까지 따지면 꼬박 한 달이 넘게 걸릴 때도 있다. 대표 보고까지 완료되면 지 지옥의 레이스가 끝나나 싶었는데 의사결정이 되지 않고 '이 부분 다시 검토해서 다음 번에 다시 보고하세요.'라는 대답을 받기가 일쑤. 하아 생각만 해도 속터지는 과정.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보고가 정제되다 보니, 최초의 부족하지만 날 것의 아이디어들은 뭉뚝해져서 그 매력을 잃게 될 때도 많다. 


그렇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던 '보고'가 여기 스타트업에는 없다. 그나마 보고와 비슷한 것은 '분기 리뷰'인데, 각 파트별로 지난 분기에 한 일과 다음 분기 계획을 소개하는 것이다. 글로벌 회사이다 보니 서로 업무 공유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이 보고에 대한 특별한 양식도 없다. 가이드가 있다면 '10분 이내 영상으로 제작할 것' 정도.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프로젝트 방향성과 개요를 발표할 일이 있었는데, 이 역시 별도의 ppt 장표를 만들지 않고 내가 작업 중이던 구글 엑셀 문서 그대로 보여주며 발표를 했고, 피드백은 그 문서에 서로 댓글을 달아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작년 연말에는 성과 공유 및 내년 계획 발표 자리가 있었는데 대표가 직접 문서를 작성해서 발표하고, 팀원들이 앉아서 듣고 질문을 하고 했는데 참으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년에 어떻게 매출 올릴지 다들 아이디어 내놔봐"하면 잔뜩 주눅 들어서 이것 저것 썰을 풀던 과거의 모습이 겹쳐 헛 웃음이 나왔다. 보고 없는 세상이라니... 이런 곳도 있구나.


보고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니 본업에 집중할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 보고를 위한 보고가 아니라, 정말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스스로 정리해서 보고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어쩌면 이 회사에 보고가 없는 이유가 회사의 대표가 회사의 서비스와 기술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의사결정을 위해 임원들을 이해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는데 그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IT 기술에 이해도가 낮은 임원들에게는 배경 지식부터 하나 하나 설명이 필요했다. 


결론은 쓸데없는 보고가 없는 조직이 일하기 좋다는 것.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려 중이라면 대표의 백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조직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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