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스타트업 적응기 6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우리 회사에서도 자율 재택근무가 시행되었다. 스타트업 특성 상 원래도 출근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7시~10시 사이 출근해서 8시간 일하고 퇴근하는 시스템이라 나는 8시쯤 일찍 출근해서 5시쯤 퇴근하곤 했다. 현재는 우리팀 동료 70%는 재택, 30%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무실 근무가 오히려 마이너한 케이스.
나 역시 초반에 재택 근무를 시도했었다. 왕복 두 시간의 출퇴근 시간도 줄이고 옷이나 화장에 신경쓸 필요도 없어 얼마나 편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힘든 점이 많았다. 집에서의 근무 환경이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회사의 큼직한 듀얼 모니터와 사무용 의자에서 일하다가 집에 있는 작은 노트북, 딱딱한 의자에서 일하려니 몸부터 피곤해지기 시작. 저녁 6시가 지나고 퇴근 땡! 했는데도 물리적 공간이 동일하다보니 퇴근한 기분이 들지 않고 머리 속에 계속 일 생각이 났다. 회의 때 뒷 배경으로 흐릿하게 비춰지는 우리 집 배경도 거슬리고... (이건 물론 배경 설정을 바꾸면 될 일이지만, 이왕이면 집 자체가 예뻤으면 하는 욕심)
결론은 재택 이틀만에 사무실 복귀. 이 시국에 전철안의 엄청난 인파를 뚫고 출퇴근을 하는 게 찜찜하긴 했지만 확실히 회사에 오니 마음에 안정이. 게다가 대부분이 재택 중이라 사무실이 너무나 한가하고 조용했다. 그야말로 독서실 분위기. 이어폰을 끼고 옛날 음악을 들으며 기획안을 작성하니 이제야 안정감이 들었다. 집보다 회사가 편한 걸 보면 난 역시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인듯. 결국 나는 재택 근무에 적응했기보다는 동료들이 재택 근무 하는 것에 적응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이 재택 근무를 하면 일이 진행이 안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착착 잘 굴러가고 있다. 다들 구글밋에 익숙해지고 대면 회의보다 시간 약속도 잘 지키게 된다. 대면 회의때는 먼저 모인 사람끼리 얼굴보며 잠깐 잡담하고 있으면 한 명씩 도착해서 5분, 10분쯤 시간이 휙휙 지나가서 지각해도 티가 잘 나지 않았었다. 온라인 회의때는 다들 카메라를 꺼두는 경우도 많고 침묵속에서 지각자를 기다리는 경우도 많아 1분만 늦어도 치명적인 잘못을 한 것만 같다. 확실히 시간 준수에 예민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재택 근무의 확실한 장점인 듯 하다. 자백하자면 예전엔 회사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어영 부영 시간을 떼우다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꽤 많았다. 근데 회사라는 공간 밖에서는 순전히 나의 결과물로 내가 한 일을 증명해야 해서 오히려 꾀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잠시는 게으름을 피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제대로 일을 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쉬운 점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슬랙 Slack 등 텍스트로 의사를 전달하다 보면 똑같은 요청이라도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고 반대 의견 등을 말할 때 의도와 다르게 세게 전달될 때가 있다. 얼굴을 보며 말했다면 부드럽게 넘어갈 일도 슬랙이나 화상 회의에서는 쉽지 않다. 표정이 안보이는 상태라 답답할 때도 있고, 이런 건 계속 적응하면서 풀어야 할 숙제다.
재택 근무는 IT업계에서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어쩌면 앞으로는 출근할 사무실이 없고 무조건 재택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 이미 100% 재택 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들도 있다. 새로 이사할 집에는 회사와 똑같은 환경을 세팅해두어야겠다. 데스커 책상과 의자, 듀얼 모니터까지. 근데 나의 최애템 사무실용 캐논프린터복합기는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