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 남편
불만 가득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금요일 오후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어머나 웬일이야?"
다름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우편물이다. 건강보험료가 평월달에 비해 3배가 올라서 나온 것이다. 통보서를 받아 들고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은 금액이 아니라 놀란 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업무시간이 끝이 났고, 주말이 지나야 연락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강보험료가 갑자기 이렇게 많이 내라는 통보서를 받았어 무슨 일이지?"라며 미주알고주알 남편에게 알렸다. 업무시간이 아니니 월요일에 알아봐야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일은 빨리도 전화하네"라며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남편은 육지에서 일을 하고 난 제주에 머물며 아이들을 케어하며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부부 같은 형태다. 2주에 한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쯤 남편을 만나러 내가 육지에 가거나 남편이 제주에 온다.
매일 남편은 아침 모닝콜부터 시작해 자신의 1시간 남짓의 퇴근길 운전 중에는 전화를 하며 숙소에 들어가면 전화를 끊는 사람이다. 바쁠 때 나는 남편의 전화를 몰아서 받는 날도 많았다.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전화를 받지못 할 때는 회의나 상담등 못 받을 상황에는 휴대폰의 벨이 울리지 않게 무음이나 진동모드를 해놓았다가 끝이 나면 모드해제를 잊어버리고 전화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부재중 전화가 5-6통 일 때도 있다. 그럴 땐 나도 놀라서 부랴 전화를 하면 남편은 화를 내곤 한다. "내가 내 마누라한테 전화하는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냐"며 투정 같은 화를 내고 잔소리를 쏟아 낸다.
솔직히 전화를 받을 때는 그 말이 그 말이고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시시콜콜 이야기들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 늘 전화로 대화를 하며 지낸다. 나 역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 세울 때도 많다. 그러다 나는 가족 단톡방에 종종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시간을 알려둔다. 심지어 사우나를 가기 직전 "엄마 목욕탕 들어간다"라는 메세를 올려두기도 한다. 그렇게 전화에 대해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로 사는 내가 돈을 더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보고 득달 같이 전화를 하니 남편의 반응은 '이런 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볼멘소리를 할만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소리 했을 내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가만히 남편의 반응을 살폈다. "이런 일은 빨리도 전화하네"라는 그 뒷말에 한마디가 더 붙었기 때문이다. "보내라는 것은 안 보내고!"라는 한마디를 더 붙여진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며 보내라는 게 또 없었는데 보내라고 했던 게 뭐였을까?를 짧은 순간에 떠 올리려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순간 남편의 투정과 짜증과 그 말은 나를 좀 바라봐 달라는 말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보험료에 대해 몇 마디 더 건네고 남편의 물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애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뭘 보내라고 했는데?"라며 반문했을 것이고 어쩌면 남편과 말다툼을 했을지도 모른다. 올해로 50세가 된 남편은 어쩌면 갱년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혼자서 떨어져 지내느라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쓰는 단어에서 드러나는 것을 최근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두 달 전 한번 심하게 다툰 이후로 난 종종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해! 정말 힘든 사람이야!"라며 생각했었다.
오늘은 남편의 말을 곱씹어 보며 보내라는 거는 안 보낸다는 말은 내게 더 많이 전화해 주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남편의 말들을 써보기로 했다. 평소에 난 남편을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을 미워하거나 남편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과 함께 하고 싶은 나는 남편의 톡톡 쏘는 언어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비유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요즘 MZ세대들의 언어 중에는 "관종"이라는 말이 있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이르는 신조어이다. "내 남편은 관종이다"라고 생각하고 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고 나의 변하는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사랑이라는 콩깍지는 벗겨진 지 아주 오래지만 의리와 정만 남은 중년의 삶을 말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씩 변해하는 상상을 하며 두근두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