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작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라고 하는 시작을 알렸다.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작이 있다는 건 끝이 있다는 뜻도 포함한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동안 삶을 살아오며 나에게도 크고 작은 많은 시작과 끝이 있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쾌거를 경험하기도 하고 낙심을 경험하기도 했고, 다시 말해 실패와 좌절이라는 맛을 숱하게 봐오기도 했다. 그 시작과 끝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 만지기 했고, 반대로 대출통장이 늘어 나는 경험도 했다.
만남의 시작이 있었으면 헤어짐의 경험도 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시작을 통해 만났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할 만남도 있었다. 짧은 만남의 경험을 통해 너무도 짧았던 만남으로 평생 그리워하고 아파야 했던 나의 시작과 끝은 짧기만 했던 일도 있다. 어찌 되었건 작은 시작들은 기쁘기도 하고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며 슬피 울며 애통을 경험하기도 했던 것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울림을 주었다.
제주 선흘마을에 할머니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그림학교가 있다. 그곳에 봉사를 다니며 만난 한 할머니의 그림에서 느껴져 오는 마지막을 떠올리는 그림이었다. 평생을 그곳 선흘에서 시작되어 태어나 자라고 이제는 노년기를 맞이하여 어찌하다 보니 또 다른 시작인 훌륭한 미술가 선생을 만남의 시작으로 그림을 배우며 그리는 할머니들의 그림 속에는 한평생의 희로애락 인간의 삶이 그려져 있다. 어느 누구의 삶은 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나 다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 할머니의 그림 중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고 가슴에 집을 안고 있다.
왜 집을 가슴에 안고 있느냐 물으니 할머니는 대답하시길 “내가 평생 산 집이라 내가 죽으면 이고 지고 갈 수 없으매 아쉬워서 끌어안고 있지”라고 말씀하셨다. 4.3을 겪으며 세상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할머니들에겐 살아남아 기와집을 짓고 살아가기까지는 죽을힘을 다해야 했던 것이었다. 왜 끌려가 죽는지 모를 공포 속에서 남편과 자녀 혹은 형제를 잃고 가족과의 마지막을 경험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집은 너무나도 큰 존재론적 의지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4.3의 아픔을 이야기하실 땐 웃음끼 없이 또렷하게 말씀하신다. 평균 나이 87세 사건의 시작과 끝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끝이 없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쓰기 시작한 그 시작이 있었지만 글쓰기는 그 끝이 없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만 알고 싶어 간직하던 나의 이야기를 오픈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작은 남을 위해 썼다기보다는 나는 나를 위해 썼다. 그 시작이 벌써 2년여를 넘어간다. 왠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글쓰기가 나를 올바르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작이 되었다.
아직도 오픈되지 못한 내가 많이 남아있다. 진짜로 오픈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만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질문하기보다 나에게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나를 알아가던 공간이었고 나을 볼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때로는 생각한다. 내 글을 읽어줬으면 아니 어떤 날엔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다. 어떤 시작과 마지막 보다도 솔직하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도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