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 최고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학교도 못 댕기고 평생을 밭매기만 하고 살았쥬게
"나는 딸이 넷인디 둘은 선생이라" 몇 번의 봉사로 선흘 할망들과 친해져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림 완성을 도와주고 무슨 물감을 입혀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할망들에게 그림물감을 찾아주고 물감을 짜드리고 말벗이 되어 드린다. 그렇게 몇 날을 만나게 되니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시며 좋아해 주신다. 옆에 계신 할망이 "우리를 가르쳐 주니까 선생님이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는 평생을 선흘에서 학교도 안댕겨보고 밭만 메주게 암것도 몰라 선상님 같이 많이 안배와 난 아무것도 모르주게 멍청이라 멍청이"
배움에 대한 갈망과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한숨을 크게 쉬며 한평생을 사신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신다.
들으며 할망들에게 말씀드렸다. "삼촌 나는 밭에 나는 풀도 모르고 어떻게 농사지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밭일을 삼촌이 제일 똑똑한 선생이주게! 그리고 선흘 마을은 삼촌이 제일 잘 알쥬? 난 선흘 마을을 잘 몰라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웃으신다. 그 웃음 속에는 방금 전 아무것도 모른다는 당신의 말이 물거품이 사그라드는 속 시원한 웃음이었다. "삼촌이 최고 주게!"라고 시원하게 엄지 척을 들어 올려드렸더니 옆에 계신 할망들도 웃음바다가 되었다.
제주에 8년차 살면서 나는 모든 제주 할망들은 해녀였을 거라 생각했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면 선흘할망들은 누구도 해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바다 근처에 사시는 분들만 이 해녀였고 중산간에 사시는 어른들은 물질을 하지 않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선흘 할망들은 다 밭만 메주게" 그랬다. 그렇게 밭담의 전문가들인 샘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나만의 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최고로 보이는 것만을 찾아 부러워하거나 혹은 질투심을 갖기도 한다. 내 손에 쥐어진 최고 엄지 척을 나에게 하지 못하고 비교하며 밤새 힘들어하거나 그 비교 때문에 다음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삶의 방법이라며 틀어 가두어 두고 그 틀을 벗어나거나 못 미치면 못한다며 바로 상심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바로 내 경우였다.
선흘 미술관 할머니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내 안에 나를 가두지 말자 나 스스로 엄지 척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자율성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 배움을 갈고닦은 교사 자신의 생각의 틀에서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틀렸다고 하지 않아야 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동행해 주었어야 했다. 창의적인 아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하길 바라봐 주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렇게 기다려주기까지는 꽤나 진지하거나 지루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못하는 게 대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귀하게도 선흘 할망들은 평균 나이 87세에 비로소 자신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림으로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던 배움을 넘어서 그럼에도 자신들이 최고임을 알아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