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죽을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질문이자 소망이었다. 매일 컴컴한 어둠 속에서 죽음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삶을 포기한 나는 일어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숨만 쉬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코로나 시대란 핑계를 대며 어두운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그때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로 계절 따라 변하고 있는 자연을 봤다. 나의 시간은 어둠 속에 갇혀 멈춰버렸는데 밖의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삶을 포기한 한 여인이 떠오른다. 바로 오 헬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무명의 여류화가 존 안나이다. 존시란 애칭으로 불린 이 여인은 죽음을 기다린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존시는 친구 수와 함께 3층짜리 벽돌집 꼭대기에 화실을 구하고 따뜻한 5월에 이사를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추운 날씨의 11월. 폐렴이 존시와 수가 사는 가난한 동네에 퍼지자 죽음이 매일 사람들을 덮쳤다. 그리고 폐렴에 걸린 존시. 사경을 헤매는 그녀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그녀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작은 유리창을 바라보며 숫자만 세는 것뿐이었다. “열하나”, “열”, “아홉”.
존시가 세고 있었던 것은 뿌리가 썩고 말라비틀어진 늙은 담쟁이덩굴의 나뭇잎이었다. 이제 남은 잎은 ‘다섯’. 3일 전에는 100개였던 잎들이 다 떨어지고 다섯 개만 남았다. 당쟁이의 마지막 잎까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존시. 그렇게 그녀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수는 마음을 졸이며 커튼을 걷었다. 다행히 담쟁이 잎 하나가 아직도 벽에 붙어 있었다. 밤새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담쟁이 잎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그리고 또 그다음 날에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외로이 버티고 있는 마지막 잎을 보고 존시는 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존시를 살린 마지막 잎새는 그림이었다. 언젠가는 걸작을 그린다는 일념으로 빈 캔버스만 바라보며 살던 실패한 화가 베어먼. 그는 죽어가는 존시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잎새를 그린 베어먼은 폐렴에 걸려 이틀 후에 사망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염원하던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1905년에 출간된 이 단편 소설엔 작가 오 헨리(본명 William Sydney Porter, 1862-1910)의 아픈 삶이 스며들어 있다. 그의 아내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녀가 아플 때 남편은 도망자 신세였다.
당시 작가는 그가 근무했던 은행에서 횡령했다는 죄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감옥에 갇히는 것이 무서웠던 그는 남미 온두라스까지 도망갔고 그곳에서 6개월을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즉시 아내 곁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를 살릴 수는 없었다. 1897년 7월 25일에 떠난 아내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1898년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기다리는 것도 지쳤고 생각하는 것도 지쳤고 전부 다 내려놓고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가고 싶다.’ 소설 속 존시의 말이다. 이 표현은 작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떠내려가고 싶었던 마음이 담긴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내를 닮은 딸이 있었다. 딸은 아내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잎새였다. 그는 글을 썼고 아내와의 추억도 그의 작품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300편이 넘는 단편 소설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48세가 되던 해인 1910년에 아내의 곁으로 떠났다.
소설 속 화가 존시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죽고 싶어 하는 것은 죄지!’라고. 그리고 손거울을 찾고 먹을 것을 찾았다. 그리고 화가였던 그녀는 언젠가 나폴리 만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삶을 계속 살려는 의지가 생겼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남편의 사진을 끌어안고 1년을 살았다. 그리고 2020년 9월부터 나는 사진 속의 남편의 모습과 추억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렇다. 남편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잎새는 바로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