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라진 후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고 우리 집도 돌보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정성스럽게 가꾸던 집엔 쓰레기만 쌓여갔다. 집안 곳곳에 쌓이는 찌든 때와 먼지.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던 나는 돌봄이 필요한 초록 식물을 모른 채 했다. 우리 집 작은 정원에 사는 초록색 식물은 말라죽어가고 있는 내 삶의 시간 속에서 같이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초록색 잡초가 쑥쑥 자라나 정원을 뒤덮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데메테르의 사연이 떠오른다. 그녀는 농경과 공물의 수확을 책임지고 있는 대지의 여신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가 사라졌다. 꽃을 꺾으며 들판에서 뛰어놀고 있던 딸이 사라졌다. 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 데메테르. 하지만 그 어디에도 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산발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두 손으로 계속 가슴을 쳤다. 그녀는 좌절했고 분노했다. 그녀의 울분은 보살핌을 받아야 할 대지로 향했다. 분노한 여신은 비옥했던 대지를 불모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독보리와 엉겅퀴들과 제거할 수 없는 잡초가 대지를 뒤덮었다.
딸 페르세포네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저승의 나라로 데려갔다. 사랑에 빠진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죽음의 세계에 가두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신은 제우스 신에게 찾아갔다.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의 딸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에서 석류 하나를 먹어버린 상태였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지하세계에 속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녀는 죽음의 신 하데스의 아내가 되었다.
여신은 딸을 죽음의 공간에서 구해내기 위해 싸웠다. 결국 제우스 신은 페르세포네에게 일 년의 반은 어머니의 품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하데스의 아내로 살라는 명을 내렸다.
일 년의 반을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딸. 어머니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딸이 죽음의 세계로 떠나면 슬픔에 잠긴 대지의 여신은 대지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자 보살핌을 받지 못한 대지는 여신의 마음처럼 쓸쓸한 가을이 된 후 차츰 꽁꽁 얼어붙는 차디찬 겨울로 변했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때가 다가오면 대지를 다시 돌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름다운 색상의 자연이 여신의 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대지는 다시 살아난다. 봄의 시작이다. 칙칙한 공간에서의 삶을 떨쳐버리고 어머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딸. 두 모녀의 기쁨과 환희가 절정에 오를 때 따뜻한 여름이 된다.
여기 클로드 모네의 <개양귀비> 그림을 보자. 파란 하늘은 흰색 구름으로 덮였다. 그리고 빨간색 지붕의 집을 중심으로 나무들이 지평선을 그리며 화면이 둘로 나뉘었다. 전경에 펼쳐진 들판. 그곳엔 풀들이 무성하다. 그리고 화가의 속도감 있는 화필이 돋보이는 빨간색 반점들. 활짝 핀 개양귀비 꽃이다. 늦은 봄과 초여름에 활짝 피는 꽃 개양귀비. 이 꽃은 딸 페르세포네를 상징한다. 데메테르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신들이 선물한 개양귀비 꽃이기 때문이다.
화면 전경에 어린아이와 엄마가 산책을 하고 있다. 아마도 어린아이는 당시 6세였던 화가의 아들일 것이다. 어린 아들은 아름다운 빨간색 꽃을 따며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활짝 핀 개양귀비 꽃의 붉은빛 정서는 자연에 울려 퍼지고 자연도 암울했던 겨울을 잠시나마 잊고 황홀한 봄을 즐기고 있다.
불행하게도 남편과 나의 봄은 영원히 사라졌다.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우리의 봄. 나는 죽음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남편을 그 어두운 공간에서 구해낼 수 없었다. 큰 병원으로 옮겨진 그날 저녁, 남편은 뇌사 판정을 받았다. 내가 남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참하게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종이에 사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의사는 내 앞에서 많은 것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와 여동생이 찬찬히 다시 설명해 주면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고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남편을 위한 행동이란 말에 나는 주저앉았다. 일주일 후 남편의 몸이 붓기 시작했다. 연명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에 남편의 몸속에 있는 모든 장기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남편의 몸에 어두운 얼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형과 나는 이제는 남편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존엄사를 원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거절했다. 외국인인 남편은 프랑스 대사관에서 법적 문제를 논의한 후에야 존엄사가 가능하다는 말만 했다.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울부짖었다. 의사에게 소리쳤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법적인 책임은 내가 다 지겠다고. 제발 남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달라고 절규했다. 내 손으로 직접 하겠다고. 하지만 병원에서는 절차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남편의 마지막 순간마저 편안하게 해 줄 수 없는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중환자실 앞에서 울부짖는 내 비명을 남편이 들었던 것일까? 그날 새벽 1시 25분에 남편은 스스로 떠났다.
그날 여동생이 말했다. “형부는 마지막까지 언니를 위하네!”라고. 나는 그렇게 남편의 마지막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