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았었음을 기록한다

by YYMassart
Y. Y. Massart, <이 세상에 왔다 갔다!>, 2021년 1월




의 형 다니엘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잊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모든 인연을 끊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거든.”


네가 떠난 지 3년, 너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건가. 는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나의 그리움이 너의 발목을 너무 무겁게 만드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다. 근데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너를 놓아줄 수가 없다.


삶은 많은 순간이다

비현실적인 현실에 놓인 일상은 암흑보다 더 암흑 같았다. 나는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처럼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일 년을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다가 어느 날 문뜩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나의 뇌는 작동불량 상태였다. 그 삐걱거리는 뇌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사실 나의 정신만 버벅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손도 버벅거리고 있었다. 30년 전엔 쓱쓱 그리던 드로잉 실력은 내 머릿속에서만 보존된 허상이었다. 다행히 아날로그 방식의 나와는 달리 미술세계의 장비는 신기술의 변화로 선택의 폭이 넓어져 있었다. 신문물을 활용해 보기 위해 처음으로 아이패드 하나를 구매한 뒤 무료 스케치북 어플을 다운받았다. 사진 화면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쉬웠다. 그리 높은 드로잉 실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너를 그릴 수 있다는 기대는 매일 아침 나를 일어나게 했다. 좋든 싫든 매일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실력도 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진 속의 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되어 젖병을 물고 있었고, 유모차에 앉아 하늘을 보기도 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4살 위인 형과 함께 욕조에서 물장구치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 더 자란 모습의 너는 눈 내린 날엔 숲에서 나뭇잎 하나에도 신기해했다. 그리고 햄스터를 안고 부드럽게 쓰다듬는 표정에선 한 소년이 평온한 순간을 만끽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T. 윌리엄즈는 ‘죽음은 한순간이며, 삶은 많은 순간이다.’라고 했다. 너의 순간들을 그리며 나는 더 많은 너의 순간들을 원했다. 사진첩, 컴퓨터, 핸드폰, 카메라, 외장하드, USB, CD 그리고 이메일을 뒤졌다. 너의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찾기 위해 샅샅이 뒤졌다. 너와 더 많은 교감을 하려면 더 많은 사진이 필요했다. 하지만 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너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랬다. 너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아픔이었다. 매번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Y. Y. Massart, <너의 순간들>, 2021년 6월




내일은 새벽부터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사랑하는 맏딸 레오폴딘(Léopoldine Hugo)은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등졌다. 아버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피눈물을 흘린 소설가는 집필을 멈췄다. 펜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독자들은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의 글을 기다려야 했다.


레오폴딘은 14살이 되던 해 21살의 청년 샤를(Charles Vacquerie)과 사랑에 빠졌다. 딸은 당장 결혼하게 해 달라고 매달렸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아버지는 딸이 너무 어리다는 연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5년 후, 성인이 된 레오폴딘은 1843년 2월 15일에 사랑하는 샤를과 함께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올린다.


행복도 잠시, 같은 해 9월 4일 레오폴딘은 남편과 함께 타고 나간 배가 전복되어 익사한다. 사랑하는 딸이 죽는 날, 아버지 빅토르 위고는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통신망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라 가족은 아버지에게 이 슬픈 소식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9월 9일,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마을 Rochefort의 한 카페로 들어간다. 식사를 하기 위해 앉았다. 그는 신문을 가져와 펼쳤다. 신문을 읽다가 레오폴딘이 죽었다는 보도가 실린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슴이 찢어졌다. 비보를 읽고 파리로 바로 출발했지만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딸의 장례식은 끝난 후였다.



Adèle Foucher, <레오폴딘 독서>, 1837년 (이 그림은 어머니가 딸을 그린 것이다.)




딸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딸의 죽음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인지 아버지는 차마 딸의 무덤에 갈 수가 없었다. 딸이 떠나고 3년 후, 1846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의 무덤으로 향한다.


알아, 네가 나를 기다린다는 거

난 더 이상 너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어

너 있는 곳에 다다르면 네 무덤 위에

푸른 호랑가시나무와 활짝 핀 히드꽃 다발을 놓으련다.

딸에게 바치는 시 <내일은 새벽부터, (1856년)>에서


그림으로 사랑한다

와 함께 방문했던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집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너의 일일 가이드 역할을 했다. 천재 소설가의 집은 파리 마레 지역의 보주 광장에 위치했다. 그의 집은 17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대저택이었다. 소설가 가족들의 사진과 그림이 걸려있는 거실, 작업실 그리고 침실 등을 둘러보며 나는 너에게 소설가의 불행했던 가족사를 설명했다. 너는 내 이야기에 집중했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사진과 그림 그리고 유물을 천천히 관람했다. 침실에는 소설가의 임종 사진과 그가 운명한 침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붉은색 벽과 어두운 공간의 침실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바로 나왔다. 하지만 너는 천천히 둘러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철학가 롤랑 바르트는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는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망각이란 어떠한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언젠가는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억.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 철학가는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했다. 그가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존재는 바로 어머니였다.


1978년 4월 12일 자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썼다. “그녀가 살았었음을 기억하라.”


너를 잃고 앞날이 캄캄했던 나는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긴 시간을 헤맸다. 그때 나에게 내려온 삶의 동아줄이 바로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으로 너를 기록하고 기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흩어져 사라질 수 있는 내 기억을 부여잡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문득문득 기억 때문에 슬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림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솔직히 너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다. 너에게 초상권의 동의도 얻지 않고 너의 이야기와 모습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그림으로 너를 사랑한다.


나는 오늘도 그림으로 네가 살았었음을 기록한다.




Y. Y. Massart, <너의 순간들 2>, 2020년 9월




행복을 누리자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마치 인간들을 모르는 것처럼 장님으로 살고 있다. 나의 손이 확고부동한 것을 잡고 있다는 믿음을 전적으로 잃어버리지는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 “자! 기운을 내자! 변함없는 마음이여! 그대는 한 가지 불행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이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누려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쳐놓은 운명의 올가미에 걸린 나, 어느 날 불쑥불쑥 그 올가미는 나를 꽉 조여와 숨통을 막아버린다. 그땐 나는 너를 그리며 온 힘을 다해 너에게 몰입한다. 그러면 올가미는 조금씩 느슨해지고 나는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나는 한 가지 불행(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로 그림이다.


오늘 나는 니체의 말을 외쳐본다.

“자! 기운을 내자. 너를 향한 변함없는 내 마음이여! 이제는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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