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어깨에서 내려줄 상상의 세계

단테의 <신곡>

by YYMassart
Y. Y. Massart, <슬픔의 세계>, 2022년 1월


‘그 누가 그대의 슬픔을 어깨에서 내려줄 것인가? 그렇게 하기에 나는 너무 약하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우리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대를 위해 누군가가 그대의 신을 다시 깨울 때까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별자는 슬프다. 무겁게 내려앉은 슬픔을 걷어내기는 힘들다. 슬픔의 그물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힌다. 나의 애도 시간은 길었다. 한 달 전에 3년상을 치르고 겨우 빠져나오는 중이다. 영원히 걷히지 않을 슬픔은 마음 한 구석에 남겨둔 채 천천히 삶을 준비한다.


책 속을 뒤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 세계는 존재할까?’를 붙들고 살았다. 홀로 어두운 동굴에서 죽음에 관한 질문들을 던지며 괴로워했다. 그때 찾게 된 것은 책이었다. 다른 사별자들의 경험담.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의 진료 경험담, 철학자들의 생각 등을 다룬 서적을 뒤졌다. 책 속에는 상실과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조언과 어떻게 서로 지지하고 도움을 줘야 하는지를 다뤘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극복의 방안에 대해서는 심리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심리치료 경험담을 예로 들어가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좋은 도움말이다.


‘비극은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우리를 포로로 삼는다. 비극을 피하려면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역경에 직면하더라도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도둑맞은 것을 스스로 되돌리려는 행동이다.’ (애덤 그랜트)


예일대에서 17년간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한 교수라면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셸리 케이건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죽음과 삶, 영혼에 대한 논리를 철학자들의 시선에서 이성적으로 풀어냈다. 그의 이론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내가 죽음에 관한 논문을 쓴다면 도움이 될 도서지만 슬퍼서 발버둥 치는 나에게는 너무나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이었다.


‘“사후의 삶이 존재할까?" 일반적으로 ‘죽음’은 ‘삶의 끝’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당연히 “아니오”다.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지 묻는 것은 삶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삶이 남아 있는 것인지를 묻는 ‘자기모순적’ 질문이다.’ (셸리 케이건)


죽음, 영혼, 사별, 애도에 대한 책(한국어, 불어)은 많았다. 그중에 나의 마음을 움직인 책은 바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애도 일기>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이다. 어머니를 잃은 후 2년이란 긴 시간 동안에 겪은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았다.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책 중에 나에겐 가장 흡입력이 높은 글이었다. 그의 독백에서 느끼는 외로움, 너무나 평범했던 일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아픔 등 작가의 애도 일기는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나를 울렸고, 공감했다.


1977년 11월 6일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77년 11월 11일

외로움, 대화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무신론자인 나는 종교 서적도 뒤졌다. 최소한 그곳에는 천국, 환생, 윤회 등의 이론이 존재했고 나는 사후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가 사랑한 사람은 저 세상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장에서 단테의 <신곡>을 집어 들었다. 다시 읽으며 나의 슬픔을 내 어깨에서 내려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었다.



Y. Y. Massart, <나를 인도하는 너>, 2021년 11월

단테의 <신곡>을 다시 펴다

단테의 <지옥편> 제1곡,

‘인생의 반평생을 지냈을 무렵, 나는 바른길에서 벗어나 어두운 숲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숲이 얼마나 거칠고 무서웠던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절로 솟아난다. 죽음도 그보다는 더 무섭지 않으리라.’


나의 마음을 반영한 첫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지옥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가 천상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발상이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녀가 죽은 뒤에라도 이루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책이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문학에 영감을 준 뮤즈였다. 9살 단테는 아버지의 지인의 파티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9년 뒤, 18살이 된 단테는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가에서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자신을 알아보는 베아트리체, 그는 사랑에 빠진다. “그때부터 사랑이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단테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거기서 끝난다. 그녀는 1290년 6월 9일 24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베아트리체가 죽고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1304년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여주인공은 베아트리체, 남주인공은 단테. 그리고 그들의 다리 역할은 베르길리우스(고대 로마시대의 최고의 시인)가 맡았다. 그는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고 지옥으로 들어간 단테를 인도해 연옥까지 안내한다.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대가 단테를 인도해 주세요. 저는 베아트리체입니다.’


단테는 <신곡>으로 지옥, 연옥, 천국을 상세히 그려내 중세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상상하고 싶은 세계만 다시 읽었다. 내가 믿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었다.




Y. Y. Massart, <초록빛 세계>, 2021년 3월


경화증에 걸린 슬픔

롤랑 바르트는 어느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린 슬픔을 ‘경화증에 걸린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경화증에 걸린 슬픔은 깊이가 없어진 슬픔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면만이 있는 슬픔, 아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단단하게 둘러싸서 덮고 있는 각질층들 : 그런 각질층들의 커다란 덩어리들.” (1977년 11월 1일, 애도 일기)


요즘 내가 느끼는 슬픔이다. 무엇인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느낌의 슬픔. 울지는 않는다. 하지만 슬픔이 딱딱하게 굳어 내 몸속에 있다는 것은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딱딱한 슬픔으로 넘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지옥에 익숙해진 마음, 딱딱해진 슬픈 굳은살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차츰 지옥에서 벗어나 연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이제 눈과 가슴을 무겁게 내리눌렀던 죽은 공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연옥 편> 제1곡)


다시 만나는 장소, 초록 세계

연옥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불길이 타오르는 벽에서 멈춘다. 단테는 그곳에서 망설인다. 불길을 지나가라고 하는 베르길리우스, 하지만 무섭다. 그때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보이지 않느냐? 오로지 이 벽이 너와 베아트리체를 가르고 있구나!” 그 불길을 통과하려면 활활 타오르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은 없다.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싶은 단테는 그 영원의 불길을 통과한다.


단테가 도달한 장소는 바로 에덴의 동산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맞이한 색은 초록색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지에 처음 올라오는 색상, 그리고 꽃봉오리, 잎사귀, 과일들의 발원이 되는 색은 초록색이라고 했다. 빛과 어둠을 분리해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나면 탄생하는 색, 초록색. 새로운 삶이 변함없이 부활할 것임을 상징하는 초록색은 새로운 시작의 색이다.


베아트리체는 에덴의 동산에서 단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보세요! 나 정말 베아트리체예요!”


그는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에메랄드 같았다.

“지상에서 사랑스러웠던 그녀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비록 ‘경화증에 걸린 슬픔’을 떼어낼 수는 없어도 연옥의 공기를 마시며 버티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이 부분이 좋았다.



Y. Y. Massart, <초록빛 세계에서 나를 기다리는 너>, 2021년 3월


초록빛 세계에서 만나!

'싱싱한 초록으로 우거진 하느님의 숲을 구석구석 다녀보려는 열망이 새 아침의 밝은 빛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곧바로 둔덕을 떠나 천천히 평원을 가로질렀다. 감미로운 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연옥 편> 28곡)


너는 초록색을 제일 좋아했다. 평범한 삶에 만족했던 너는 온화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초록색과 잘 어울리는 너였다. 네가 있는 곳에 편안한 쉼을 연상시키는 초록색이 많다고 해서 좋다.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좋다. 사실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둘이 함께 흙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좋다. 그 무엇보다, 언젠가는 나 또한 너와 함께 할 장소로 간다는 진실이 좋다. 초록색은 새로운 시작의 색인 것처럼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시인 단테는 1321년 <천국편>을 완성하고 베아트리체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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