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위에는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함이라는 하늘, 의외라는 하늘, 자유분방함이라는 하늘이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내 주변의 세상이 멈췄다. 네가 없는 집에서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을 때 하늘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눕고 일어나는 간단한 동작마저 버거웠던 내가 바깥세상과 만나는 일은 오로지 우리 집 창틀의 직사각형 안에 나타난 자연뿐이었다. 하늘은 매일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은 하늘로 뻗어나갔다.
말할 대상을 빼앗긴 나는 집 안에서 혼자 하늘의 구름들과 놀기 시작했다. 니체처럼 가끔 구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멋쟁이라는 구름, 못난이라는 구름, 뭉클함이라는 구름, 날렵함이라는 구름, 반짝임이라는 구름, 뾰로통이라는 구름, 처연함이라는 구름, 화났음이라는 구름, 슬픔이라는 구름 그리고 너라는 구름. 내 마음대로 지나가는 구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가슴 시리도록 외로운 날도 있었다.
어느 날, 무심히 바라본 하늘에서 너를 닮은 것 같은 너라는 구름이 나타나면 나는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사실 너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 모양을 하고 나타난 구름이었다. 오래 머물러있다가 가길 바랄 때 바람이 불어와 너라는 구름을 흐트러뜨리면 속상했다. 마음속으로 “가지 말지!”라고 말할 때도 있었다. 네가 보고 싶을 땐 멍하니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뿌듯함이라는 하늘
2000년 12월 겨울에 우연히 만났던 하늘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너와 함께 파리 서부 외곽에 있는 라데팡스 근처에 살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아침 일찍, 너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너의 이마에 뽀뽀를 한 뒤, 저녁에 보자고 말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 시절 우리의 아침 루틴이었다.
겨울이라 밖은 캄캄했다. 찬바람이 나의 빰을 찰싹 때렸지만 상쾌한 바람이 나는 싫지 않았다. 일찍 집을 나오는 날은 왠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나는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의 박물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튀일리 역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수업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튀일리 정원으로 들어갔다. 정원 안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운동하는 사람들. 열심히들 산다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그때 무심히 하늘을 보았다. 순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붉은 덩어리는 강렬한 색채로 파리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색의 에너지는 나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파고드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색채치료를 연구하는 하워드 선에 의하면, 빨간색은 신체를 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강장제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한기가 느껴질 때 빨간색을 바로 사용하면 그 증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파리의 붉은색 하늘은 내 몸과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 당시 나는 행복했다. 프랑스에서 나는 너를 찾아냈고 사랑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 건물에서 수업을 받았다. 사람들은 너무나 꿈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으면 꿈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본다. 내가 그랬다. 과분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나는 “정말 네 삶이 맞니?”라는 의심을 할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시절에 우연히 만난 하늘의 일출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날의 아침을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2000년 12월 겨울에 우연히 바라본 일출에서 느낀 감정을 나는 감동, 벅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우영우의 이 대사 “오늘 아침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의 이름은 바로 뿌듯함입니다.”를 듣고 나는 알았다. 뿌듯함. 그랬다. 일출이 특별히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그날의 붉은 하늘에 내 심정이 이입되어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은 뿌듯함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뿌듯했던 것이다. 내 마음속 깊이 새겨진 하늘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뿌듯함이라는 하늘.
동행이라는 하늘
1892년 뭉크는 니스에서 병을 앓고 있었다. 그때 화가는 이 글을 썼다.
"친구 둘과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핏빛과 불의 혓바닥이 도시를 뒤덮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끝없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뭉크는 어느 날 바라본 하늘의 일몰 장면에서 영혼의 피가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의 하늘에서 느낀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절규>(1893)였다. 화가는 붉은 핏빛과 영혼의 절규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 그림을 뚫고 나오는 비명 소리를 관람자들이 듣기를 바랐다. 일몰과 죽음을 연관시키길 바랐다.
여기 독일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일몰을 표현한 그림 <산지의 강 풍경(밤)>을 소개한다. 화가 프리드리히의 일몰에는 인생의 공허함과 고뇌가 담겼다. 그림을 보자. 꿈틀거리는 구름 속에 붉은빛은 너무나 강렬해 초자연적인 존재의 위엄을 뿜어낸다. 석양의 붉은색과 거대한 산악의 검은색이 빗어낸 극적 효과는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잠재되어 있는 유년시절의 경험은 과연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을까? 죽음과 불안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생이 있다. 특히 가족의 죽음이 계속 이어지면 그 트라우마는 평생 쫓아다닌다. 화가 프리드리히는 어려서부터 “또 누가 죽을까?”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아야 했다. 그가 7살이었을 때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다. 그리고 13살이 되던 해에는 동생 크리스토퍼가 익사했다. 잔인하게도 4년 뒤, 또 다른 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중에서도 화가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남은 사건은 바로 동생 크리스토퍼의 죽음이었다. 13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사건이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동생은 호수의 얼음에 빠져 죽었다.
화가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특별하다. 그의 풍경엔 인간이 겪은 비극을 잔잔히 자연 속에 녹여내 서사하고 있다. 화가의 상흔이 짙게 배어 있는 붉은 하늘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는 뭉크의 작품처럼 시각적으로 공격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숭고하다. 멜랑콜리의 선율이 흐르는 그의 작품은 화가의 슬픈 감정을 조용히 따른다. 화가는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에 의지했고 신비스러운 자연에 의지했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그는 자연 속을 거닐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슬픔과 묵묵히 동행했다. 보고 있으면 숙연해지는 <산지의 강 풍경(밤)>의 하늘은 나에겐 동행이라는 하늘이다.
야속함이라는 하늘
나는 드라마, 영화를 보다 가끔 “제발!”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제발 살려주세요!’
픽션에선 작가의 의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그런 예이다. 영화를 보다 “제발!”이란 감정이 올라왔다. 남주인공 데니스를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아프리카의 하늘들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한 여인의 삶을 그렸다.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1885-1962)은 덴마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4년 카렌은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미대를 나온 카렌의 소망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농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1915년 외도가 심했던 남편은 그녀에게 매독을 전염시켰다. 간신히 병을 이겨냈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을 만큼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졌던 카렌은 1921년에 별거에 들어갔고 4년 뒤에 이혼을 했다. 하지만 둘은 친구 사이로 남는다.
1918년 카렌은 그녀의 인생에서 유일한,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그의 이름은 데니스(Denys Finch Hatton), 영국 공군 조종사이자 사파리 가이드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데니스는 카렌에게 아프리카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카렌은 화염에 모든 재산을 잃는다. 그녀는 아프리카 생활에 지친다. 그때 그녀의 옆에 데니스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어느 금요일, 카렌은 데니스를 기다린다. 금요일에 데리러 온다고 약속을 하고 떠난 남자를 기다린다. 하지만 데니스는 붉은 석양 속으로 자신의 비행기와 함께 사라진다. 데니스는 1931년 5월 14일 44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카렌은 1931년 7월 아프리카를 떠난다. 그녀는 고향 덴마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카렌은 아프리카의 대지에 펼쳐진 석양의 붉은빛을 등지고 서있는 데니스를 만나는 꿈을 꾼다. 이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했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A장조 K622-II, Adagio)>과 붉은 석양의 매치는 환상적이었다. 영화 속 카렌의 아프리카의 삶은 낙조로 시작해 낙조로 끝났다.
덴마크에 돌아온 카렌은 칩거생활을 하며 글을 썼다. 카렌에게 글을 쓰라고 조언한 사람이 바로 데니스였다. 그녀의 재능을 인정한 그는 카렌이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 3년 동안 집필한 그녀의 저서 <7개의 고딕 이야기>를 시작으로 카렌은 유명한 작가가 된다. 데니스는 떠났지만 카렌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집필하며 그를 기억했다.
오늘도 누군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한 기도를 한다.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하늘은 야속하게도 거절했다. 데니스를 데려가 버렸다. 야속함이라는 하늘이었다.
약속이라는 하늘
올해 봄부터 나는 새로운 각오를 했다. 집을 나가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나에겐 정말 힘든 일이었다. 마음의 다짐과는 달리 구토, 어지럼증 등 온몸으로 거부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노력하자! 일주일에 한 번,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파리 시내를 나가는 과제를 나 자신에게 부여했다. 홀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친한 지인에게 부탁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박물관에 가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일 때도 있었고 한 달에 한번일 때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약의 도움 없이) 3년 만에 파리 시내의 하늘을 만났고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박물관의 예술품들을 다시 만났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2층 서재에서 바라본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이름을 짓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후의 하늘은 많이 흐릴 뿐이다. 하지만 7월에 만났던 파리 시내의 하늘의 이름은 지었다. 약속이라는 하늘. 내 그림을 보자. 나는 오르세 박물관을 나와 걸으며 바라보았던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을 담았다. 검푸른 하늘은 나 자신과 다짐한 묵직한 약속이다. 묵묵히 파리 시내에 나가라는 의미를 담았다. 현재 나의 버킷리스트는 한 개뿐이다. 구토나 숨 막힘의 두려움 없이 파리 시내를 걷는 것.
나는 하늘을 보며 너에게 약속한다. 노력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