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식구는 늘 확인했다.
“아직도 아내가 예뻐?”
“예뻐요!”
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장난기가 많은 여동생은 형부를 놀렸다. “형부는 한국에 온 김에 제대로 된 안경을 하나 구해요. 그걸 쓰면 언니가 다르게 보일 거예요.” 그래도 너는 다시 말했다. “Really 예뻐요!” 나는 예쁜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못을 박았다.
나의 넓적한 얼굴에 튀어나온 입과 광대뼈 그리고 작은 눈. 나의 얼굴을 보고 또 봐도 예쁘다고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너뿐이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너의 그 눈빛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모두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었다. 너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완벽했다. 내가 무슨 복에 너처럼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지, 감사한 삶이었다. 너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 사람이었다.
검은색의 양면성
나는 검은색 옷을 선호했다. 부부동반 모임날에는 늘 검은색 옷을 골랐다. 검은빛이 도는 짙은 청바지와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니트를 즐겨 입었다. 팔지나 목도리로 시선을 가볍게 분산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편이라 내가 편한 옷을 입으면 되었다. 어쩌다 나름 차려입고 나서면 너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예쁘네!”라고 말했다. 그날도 검은색 복장이었다.
샤넬의 전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검정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색이다.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으면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검은색 옷은 누구에게나 무난하고 마음이 편안한 복장이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검은색은 안정감보다는 고립된 좌절을 발산하는 위험한 색이다. 사람을 검게 물들인다.
나는 “예쁘다!”라고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을 잃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숨고 싶은 삶을 살아야 했다. 나의 검은색 옷은 나의 아픈 삶을 표현했고 헐렁하고 축 처진 검은색 옷에 나는 숨어버렸다. 나의 우울한 감정은 검은색에 의지했고 나 홀로 내 삶을 검게 만들어갔다.
화가 칸딘스키에게 검은색은 ‘가능성 없는 허무’ 또는 ‘미래와 희망이 없는 영원한 침묵’이었다. 화가의 표현처럼 내가 입은 검은색 옷은 나의 우울한 삶을, 나의 허무한 삶을, 그리고 미래를 빼앗긴 나의 어두운 감정을 표출했다. 신기했다. 같은 검은색 옷인데, 네가 옆에 있을 때는 예쁘고 자존감이 높은 옷이었다. 하지만 네가 없는 세상에서는 슬퍼 보였고 주눅 들어 보였다. 검은색의 세련미는 그 빛을 모두 잃어버렸다. 검은색 옷은 나의 마음을 반영했다.
여기 뭉크의 <멜랑콜리>를 소개한다. 한 남자의 외로움과 아픔이 느껴진다. 남성의 심정은 제목이 말하고 있다. 멜랑콜리는 그리스어에서 melas(검다)와 kholé(담즙)의 합성어이다. 고대 사람들은 흑담즙이 과잉되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의 피는 검다’라는 표현도 있다. 빨간색의 피가 흑색이 될 정도로 심신이 침울하고 암담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림을 보자. 턱을 고이고 앉아있는 남자는 우중충하고 헐렁한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시련이 그대로 느껴진다. 구부러진 어깨, 생기 없는 얼굴, 길을 잃은 눈빛, 그리고 검정에 휘감긴 그의 몸은 희망이 없는 영원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화면에는 보라색 물결도 가득하다. 색채 심리에서 보라색은 정서적 불안을 느끼는 사람의 색이다. 비관적이고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이 남자는 검은색과 보라색에 숨었다. 자신의 삶을 좌절 속으로 인도하는지 모르고 숨었다. 이 남자의 모습에서 나의 검은 그림자가 투영되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 남자의 상실감에 내 마음이 아팠다.
샤넬의 상복
코코 샤넬의 험난한 일생을 담은 크리스찬 두가이(Christian Duguay)의 TV영화 <코코 샤넬>을 보았다. 나는 샤넬의 검은색 드레스에 담긴 사연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샤넬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다고 한다. 1926년에 탄생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는 그녀의 상복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영화는 재해석했다.
“카펠을 잃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채울 길 없는 공허를 남기고 카펠은 떠났다.”라고 샤넬은 회상했다.
불같은 사랑을 나눈 샤넬과 카펠. 그들의 사랑은 샤넬의 운명을 바꿨다. 칠흑 같은 어두운 시절을 보낸 샤넬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해준 카펠은 영국 폴로 선수이자 사업가였다. 그의 도움으로 샤넬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모자와 옷을 팔 수 있는 매장을 열었다. 경영의 노하우 또한 카펠의 도움을 받았다. 샤넬이 창작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카펠이었다.
카펠은 샤넬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영국 귀족 여성과 결혼했다. 샤넬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야망마저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펠도 샤넬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가 결혼하고 1년 뒤, 1919년 카펠은 교통사고로 절명한다.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녀를 절망의 늪에 빠트렸다. 하지만 슬픔에 젖어 헤맸을 때도 샤넬의 영감과 손은 쉬지 않았다. 카펠을 잃은 샤넬은 검은색 복장을 만들어 입었다. 창작의 시간을 멈추지 않은 그녀의 당당한 모습처럼 그녀의 검은색 드레스는 빛났다.
심플하면서도 편리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기품이 유지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샤넬의 상복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존중을 창조하는 자
‘자신의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한마디 하려고 한다. 무엇이 존경(존중)과 경멸, 가치와 의지를 창조했던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를 잃고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를 자책하고 나 자신을 경멸하며 살았다. 니체는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과 경멸에 빠진 자들은 스스로가 죽음을 원하고 있고 삶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존경과 가치 있는 인생을 창조하는 자라고 했다.
어떤 아픔에도 코코 샤넬의 창작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온갖 굴욕과 비참한 삶을 살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강인한 그녀는 자신을 존중했고, 자신을 믿었다.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 그밖에 또 다른 어떤 시간이 필요하단 말인가!”라고 표현한 코코 샤넬은 사랑했고 일을 했다. 일요일과 같은 휴식의 시간을 제일 싫어했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샤넬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신을 창조해 냈다.
나는 너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았다. 분에 넘치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일한 내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할 정도로 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이 세상에 적응하려 노력은 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며 나의 의욕을 다시 되살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느끼는 좌절과 슬픔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극을 받으려 노력해도 다시 제자리. 어떻게든 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도 결국 다시 제자리. 나 자신을 경멸하는 마음을 뛰어넘을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마지막 선물
나는 제 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자기 파괴적인 사고는 차츰 사라졌다. 그 자리에 너와 약속한 세계가 문을 열었다.
어느 날, 너의 마지막 선물을 바라보았다. 네가 선물한 몽블랑 볼펜을 바라보고 있다가 너에게 약속한 말이 생각났다.
“이 볼펜으로 출판 계약서에 사인할게!”
홀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한발 한발 내딛다가 절둑절둑 비틀거리고 쓰러질 수는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비록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지만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박물관을 갈 거고, 그림을 그릴 거고, 글을 쓸 거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
내가 고른 검은색 옷에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은 당당한 나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하지 않는 나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거다. 천천히 노력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너에게서 이 말은 꼭 다시 듣고 싶다.
“잘 살고 있어서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