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시간
너의 손은 따뜻했다. 그런데 의사는 끔찍한 말을 내뱉었다.
“뇌사입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고, 너는 왜 이해할 수 없는 진단을 받아야 하는지 이상했다. 아침에 웃으며 함께 집을 나왔는데, 두통 치료하고 네가 좋아하는 콩국수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밤에는 낯선 의사가 네가 죽는다고 말한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왜, 의사는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누워있는 너를 흔들어 이제는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 다 해줄 테니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나도 재미없으니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다음 주에 비행기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소리도 못 내고 울기만 했다. 나는 너의 손을 꼭 잡았다. 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나의 눈물이 너의 손에 떨어졌다.
‘그의 마음은 녹아들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방울방울 그의 손에 떨어졌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환자실의 문 앞에서
영원히 떠날 준비를 하는 너. 그런데 나는 너의 옆에 있을 수도 없었다.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은 하루에 두 번, 단 15분뿐이었다. 프랑스에서 네가 나를 지켜줬듯이 한국에서는 내가 너를 지켜줘야 하는데, 나는 너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나도 없이 홀로 누워있어야 하는 너는 얼마나 무서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중환자실의 문을 바라보며 맘속으로 너에게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여기 있어!”
밤과 낮, 낮과 밤 시간은 흘렀다. 나는 하루 종일 중환자실의 문만 바라고 앉아있었다. 나에게 허락된 15분만이라도 너를 내 품에 꼭 껴안고 싶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너였기에 나는 너에게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의 의료기구 사이에 누워있는 너. 잔인한 현실은 우리에게서 그마저도 빼앗아 버렸다. 나는 너의 손을 꼭 잡았다. 너의 손은 따뜻했다. 너를 떠나보낼 수 없는 나는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분명 너의 온기가 느껴지는 너의 손인데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그 손은 아니었다. 나는 너의 온기를 내 마음속에 담았다. 10일 동안 너를 내 눈에 담았다.
“눈이여,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이여 마지막으로 껴안아라!” 로미오의 외침. (<로미오와 줄리엣>)
갈라진 두 공간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순간을 표현한 <죽음의 천사>를 소개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부부, 아내와 이별하는 남편의 간절한 기도가 묘사되었다.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 하늘에서 죽음의 천사가 내려왔다. 검은색 망토, 암흑의 그림자가 보는 이의 시선을 강타한다. 영원히 떠나야 하는 사람을 들어 올리는 죽음의 천사. 그의 존재가 무섭다.
죽음의 천사와 함께 내려온 것이 있다. 바로 천상의 빛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줄기는 아내가 어디로 떠나는지를 암시한다. 순간 벽은 신비스러운 푸른빛 색으로 변했고 저 세상의 문을 열었다. 아내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장면은 남겨진 이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작은 희망을 선물한다. 로댕은 말했다. “죽음은 좀 더 위에 있다. 천상의 운명을 향하기 위한 안식처다.”
부부가 함께 지내온 공간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아내의 공간과 남편의 공간, 즉 저 세상과 이 세상으로 나뉘는 순간이다. 아내의 공간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남편은 오로지 아내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신에게 빌고 또 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제발 아프지 않은 곳, 평온한 곳으로 잘 가! 사랑해, 나중에 만나!”
떠나야 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다.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있다. 자신이 어디로 올라가는지 알리는 중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신호를, 말을 듣지 못하는 공간에 갇혀있어 안타깝다. 아내의 슬픈 얼굴에서 느껴지는 사랑. 비록 빛의 세계로 떠나지만 남편과의 영원한 이별이 슬픈 아내, 남편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가 전달될 수 없어 슬픈 아내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셰익스피어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이별은 함께 있으면서도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서 동시에 나와 함께 가는 것이고, 나는 이곳을 떠나면서도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사별하는 부부는 갈라진 두 공간에서 간절히 서로를 원하고 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한 공간이 아니라 너무나 슬프다.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오라스 베르네(Horace Vernet, 1789-1863)가 1851년에 제작했다. 화가는 그림 속 여인의 아버지였다. 이 그림은 딸이 떠나고 6년이 흐른 뒤에 완성된다. 아버지는 31세에 떠난 아름다웠던 딸의 모습을 영원히 남겼다. 성모 마리아의 이콘과 성경, 금색 십자가 목걸이, 변모와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 등으로 딸이 떠난 곳을 암시하고 있다. 화가 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떠나야 했던 딸의 아픈 마음을 간접적으로 담았고, 남겨진 딸의 가족에게는 천국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딸의 가족을 위로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Mon coeur”, 너의 목소리
나는 가끔 생각한다. 너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15분 동안 너의 손을 꼭 잡고 네가 작은 신호라도 보내길 간절히 바랐다. 너의 눈빛, 너의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을 기다렸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버린 너는 나에게 아무런 신호도 보낼 수 없었다. 너와 나의 공간은 이미 갈라져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의 시간을 빼앗아 버린 운명.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떠나야 했던 너의 심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 그날도 나는 중환자실의 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잠든 것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Mon coeur”.
순간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다. 똑똑히 들었다.
너는 나를 불렀다. 환청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믿고 싶은 일이다. 너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했다. 네가 나를 부르는데 나는 중환자실의 문 앞에서 꼼짝할 수 없어서 오열했다.
영원히
너는 19년 동안 한결같이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너의 손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안심시켜 주었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너의 손은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눈을 감으면 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부드러운 너의 손길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길 바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 나는 싫다. 오늘도 나는 너의 따뜻한 손이 너무 그립다. 중환자실에서 15분,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도 그립다.
글을 쓰다 나는 눈을 잠시 감는다. 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불렀던 너의 그 목소리도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H. G. 본의 이 말을 되뇐다.
“영혼은 사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