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갔다. 의사는 나에게 체중계에 오르라고 했다. 몸무게를 체크한 후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혹시 이상한 생각이 드세요. 죽고 싶다든지?”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하지만 나는 자살할 용기는 없어요.” 나의 대답이었다.
의사는 먹는 것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뒤, ‘사별자들의 모임’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그저 빨리 약이나 처방해주세요.라는 생각뿐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두 달 복용할 약을 처방해줬고 다음 진료 시간을 예약해 주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나의 몸무게는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1kg, -3kg, -5kg, -10kg, -13kg, -15kg 그리고 -16kg.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말라갔다. 몸무게가 43kg이 되었을 때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영양실조 증세인지 손톱은 갈라졌고 머리카락은 숭숭 빠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빨이 툭 부러져 떨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몸은 뼈에 살가죽이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죽음이 다가오나.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던 때라 오히려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
신화 속, 에로스(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사랑을 느낀다. 심장은 빨라지고, 사랑에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에로스의 사랑놀이에 걸려든 것이다. 에로스는 장난으로,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도 사랑의 화살을 쐈다. 사랑의 화살을 맞으면 온통 자신의 사랑을 중심으로 삶을 움직이려 한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아픈 사랑도 한다. 인간은 왜, 그토록 아픈 사랑을 거부하지 못할까? 사랑이 뭐길래!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한 숲의 요정 에코의 아픈 사랑을 소개한다.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내 헤라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다. 그 순간 헤라를 가로막는 요정 에코. 여신을 붙잡고 말을 걸으며 제우스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준다.
분노한 헤라는 에코에게 저주를 내린다.
“나를 속인 너의 혀는 능력이 줄어들어 네 목소리는 가장 짧은 말밖에 할 수 없으리라!”
에코는 평생 남의 끝말만 반복하게 된다.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진 에코는 소외된 삶을 산다. 그녀는 더욱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홀로 생활한다. 어느 날 에코는 사냥하는 나르시스를 몰래 훔쳐본다. 나르시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소리친다. “여기 누구 있니?” 잠시 후, “있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에코가 나르시스의 끝말을 따라한 것이다. 나르시스는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 와!”라고 더 큰 소리로 외친다. “와!”라는 소리는 들리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르시스는 ‘왜, 나를 피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때 숲에서 에코가 뛰어나와 나르시스의 목을 두 팔로 껴안았다. 놀란 나르시스는 “손 치워!”라고 소리치며 에코의 몸을 밀쳤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매몰차게 퇴짜를 맞은 요정 에코는 숨고 싶었다.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이후 에코는 동굴에 들어가 살았다. 나르시스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더 자라났다. 그녀의 몸은 비참하게 말라갔다. 점점 여위어가며 살갗이 오그라들었다. 결국 그녀의 뼈만 남아 바위가 되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의 끝말만 되풀이하게 되었다. 메아리이다.
1630년 경에 제작된 니콜라 푸생의 <나르시스와 에코>를 잠시 감상하자. 사랑하는 나르시스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에코. 에코의 사연을 가엾게 여긴 복수의 여신은 나르시스에게 저주를 내린다.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사랑은 하되 영원히 사랑을 얻을 수 없었던 에코의 마음을 나르시스에게 그대로 되돌려줬다. 그림은 나르시스의 죽음을 알린다. 그의 눈길은 자신의 이미지가 사라진 물가를 향한다.
두 남녀의 애절한 외사랑을 표현한 그림의 중앙에 에로스가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있다. 횃불은 타오르다 곧 재가 되어버리는 사랑을 상징한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죽음을 부르는 사랑을 상징한다. 에코와 나르시스는 상사병을 앓다 죽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다. 59세 남자 오베는 반년 전에 떠난 아내 소냐의 곁으로 가고 싶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살아있는 것에 의미가 없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갈 계획을 꼼꼼히 세운다. 그에게 죽음은 오히려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는 매일 자살을 준비한다.
고대 철학자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육체보다 영혼을 치료하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 죽음은 나쁜 인생보다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기 위한 선택일까? 너무나 고통스러워 편안함을 선택한 것일까? 오베에게 죽음은 아내 없이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었다. 사랑이란 참으로 이상하고 외고집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옆집에 시끄러운 파르바네의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누른다. 오베가 평화롭게 죽으려는 순간에 꼭 방해를 한다. 오베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주차를 도와주게 되고, 옆집 여자 파르바네의 운전도 가르쳐준다. 다른 날은 사다리를 빌려줘야 했고, 길고양이까지 집에서 돌봐주게 되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의 제자까지 초인종을 누른 후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그는 타인의 삶을 참견하게 되고 쓸데없는 사건에 계속 휘말린다. 자신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오베의 자살 계획은 점점 늦춰진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하기에는 내일도 오늘 못잖게 괜찮은 날이다.”
그랬다. 오베는 이웃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하면서 자살을 늦추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자살을 늦춘다. 오베는 그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고 파르바네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며 어느 순간부터는 자살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진다.
4년 후, 오베의 집 밖에 쌓여 있던 눈이 전혀 치워져 있지 않은 날. 파르바네는 실내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작은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가며 오베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계단을 비틀비틀 올랐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오베의 침실로 더듬거리며 갔다. 오베는 푹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그렇게 평화로운 걸 처음 봤다.
파르바네는 오베의 귀에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제 사랑을 소냐에게 전해주세요. 제게 당신을 빌려주신 것에 감사의 말도 전해주시고요.”
오베는 자신의 장례식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조문객 금지. 시간낭비 금지!’를 분명하게 밝혔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다. 오베는 아내와의 삶만이 전부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도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아내에게 갔다.
멀티비타민은 회복탄력성
나에겐 언제 회복탄력성이 시작되었을까? 쓰러져 있던 나는 먹는 것을 너무 소홀히 했다.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먹는 것에 의미가 없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 왔다. 손발이 떨리는 순간 나는 집에 있던 멀티비타민 병을 집어 들었다. 나 자신을 위해 챙겨 먹은 멀티비타민 한 알. 나는 그 한 알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고 지금 생각한다. 멀티비타민을 집어 들었을 때 나의 추락은 멈췄다. 작은 제스처 하나하나가 쌓여 회복탄력성이 작동했다.
셰릴 샌드버그의 <옵션 B>에 이렇게 쓰여있다.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역경에 반응하는 힘과 속도를 뜻한다. 쉽게 말해, 척추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척추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비록 미세한 변화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자신과의 싸움이 내면에서 일어났다. 타인의 간섭에 짜증 났지만 그 계기로 자살을 내일로 미루기 시작한 오베처럼 나는 멀티비타민으로 시작해서 음식 섭취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겪었다. 43kg에서 44kg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상실도 슬픔도 사랑도 철저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인 것처럼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했고 나의 회복시기도 나에게 맞춰 시작되었다. 불행을 받아들인 그 지점에서 나는 삶에 반응하는 순간으로 되돌아섰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표현했다. 내가 의사에게 자살할 용기가 없다고 표현한 순간에,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우선 그대 자신, 그대의 몸과 영혼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떠나고 정신적 충격을 겪으면서 나는 너를 간절히 사랑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를 향한 사랑의 깊이는 측정됐다. 이제는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측정할 차례다. 어떻게 올바르게 반듯하게 나 자신을 세워야 할지는 나에게 남겨진 숙제가 되었다.
오늘 창밖에 낙엽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이 춤춘다. 삶이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