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된 것을 용서하라!

by YYMassart
Y. Y. Massart, <나를 괴롭히는 시간>, 2021년 3월 (George Frederic Watts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음)




‘”해는 벌써 졌구나.” 그는 말했다. 미지의 것이 나를 둘러싸고,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그대는 아직도 살아 있는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무엇에 의해서? 어디로? 어디서?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나의 내면에서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저녁이다. 나의 슬픔을 용서하라!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된 것을 용서하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가을로 접어들 때 떠났다. 네가 없는 집에서 시리도록 외로운, 뼈저리도록 아픈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그 시절 나에게 저녁은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모두들 집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저녁, 나는 너를 기다렸다. 기다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Coucou! Je suis là”라고 외칠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너를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헤매는 시간이기도 했다. 집안 곳곳에 배인 너의 흔적을 찾다가 너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을 움켜쥐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어디 있어!” 침묵만 흐르는 저녁은 나에게는 사무치는 그리움만 고이는 시간이었다.


외로운 사람들을 괴롭히는 시간,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시간, 헛된 망상에 시달리는 시간. 저녁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슬픔은 우울증을 극에 달하게 밀어붙일 뿐이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려오는 저녁이 싫었다.




Y. Y. Massart, <너의 결혼반지는 내 손가락에>, 2020년 10월




설마!

너의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설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네가 떠난 지 4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날 밤에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절규하고 있었다. 나를 쥐어뜯는 아픔에 울부짖고 있었다. 집안을 빙빙 돌며 미쳐버릴 것 같아 약을 더 복용해도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너의 어머니의 목소리 “Alors!” 나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너의 어머니는 조용히 나의 눈물을 들었다. 우리의 아픔은 전화선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날 나를 괴롭힌 생각은 바로 나의 검은색 웨딩드레스였다. 불안 증상이 상승하던 어두운 밤에 나에게 꽂힌 망상은 검은색 웨딩드레스였다. 검은색의 어두운 기운은 아픈 나의 영혼을 지배해 버렸다. 나는 너의 어머니에게 드레스의 색깔 때문에 네가 죽었다고 외쳤다. 검은색의 저주가 너의 삶을 앗아갔다는 억지를 부렸다.


프랑스에서 법적 부부가 되기 위해 우리는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촐하게 치러진 결혼식, 시부모님과 증인 두명만 초대한 날 나는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다. 그냥 집에 있는 옷 중에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 드레스 하나를 고른 것뿐이다. 결혼식을 올릴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안도감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후부터 검정 웨딩드레스는 가끔 나를 힘들게 했다. 행복할 때면 특히 불안했다. 혹시 검은 그늘이 우리를 덮칠 것 같은 황당한 망상에 나는 휘둘렸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괴로워하는 나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던 너의 어머니는 나를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애가 너무 괴롭구나, 너무 아프구나’라고 이해했다. 사실 너의 어머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나의 이상한 이야기를 조용히 끝까지 들어줬다.


내가 다 쏟아낸 후, 너의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너희 둘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신랑 신부였다.”



Y. Y. Massart, <부모님의 결혼식>, 2020년 10월




웨딩드레스

흰색 웨딩드레스의 유행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색채 심리학자 에바 헬러에 의하면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레이스 산업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840년 2월 10일, 빅토리아 여왕은 흰색 드레스(세틴)와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렸다. 레이스 산업을 위한 여왕의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1853년 1월 30일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외제니 드 몽티조가 하얀 벨벳 드레스와 면사포를 썼다. 왕가 가족에서 시작된 신부복은 사실 1808년 직조기가 나오며 저렴해진 직물의 값과 더불어 1830년에 재봉틀이 발명되자 흰색 웨딩드레스의 가격은 점점 더 저렴해졌다. 일반 신부들도 선택할 수 있는 가격의 흰색 웨딩드레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흰색 웨딩드레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면, 1434년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에서 신부는 녹색의 파티복을 입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결혼식을 엿보자. 줄리엣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백작 가문의 아들 패리스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결혼식 전날 줄리엣은 유모와 함께 옷장에 있는 드레스 중에 하나를 골라 신부복으로 정하는 장면이 있다. 줄리엣은 상류층 집안의 딸이었다. 부모는 딸의 결혼식을 위해 축하음악, 축혼가, 꽃 그리고 20여 명의 요리사들이 준비한 음식 등 최고급으로 준비한다. 그럼에도 신부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부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신부복은 노란(연두)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 위에 금박을 수놓은 원삼을 입었다.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얼굴의 이마와 볼에는 동그란 연지곤지를 그렸다. 붉은색 연지곤지는 잡귀가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서양의 흰색 웨딩드레스가 한국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에 물밀듯이 밀려들어온 서구문화에 한국의 전통혼례는 거의 사라지고 폐백이란 형식으로 전통혼례복을 입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사실 한국 문화에서 흰색 옷은 상복을 상기시킨다. 흰색은 슬픔의 색이었다. 비록 서양에서 들어온 웨딩드레스는 화려했지만 그래도 흰색이었다. 과연 신부들은 자신이 선택한 흰색 옷의 색깔로 인해 불행이 닥칠까라는 불안에 힘들어했을까?


누구와!

1847년 출간된 <제인 에어>는 영국 소설가 샬롯 브론테의 작품이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고아로 자란 소설 속 주인공 제인 에어는 모든 시련과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여인상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녀의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신부는 새 웨딩드레스를 원하지 않는다. 화려한 옷이나 보석은 한 푼의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랑과 신부 그리고 목사와 서기만이 참석한 조용한 결혼식을 올린 제인 에어. 그녀의 남편 로체스터는 20살 연상이었고 평생 시중을 들어줘야 할 불구자였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너무나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10년 후 제인 에어는 이렇게 회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고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난 최고의 축복을 받았다.”


제인 에어가 옳았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비싼 예물과 예단도 아니었다. 오직 ‘누구와’였다.


나는 너와 함께 살았다. 나는 최고의 축복을 이미 받았다.



Y. Y. Massart, <어느 날, 추운 바닷가 마을에서>, 2021년 12월




아무 말없이 슬퍼하는 시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의 여성들은 결혼식 후에도 입을 수 있는 검은 비단옷을 신부복으로 선택했다. 프랑스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웨딩드레스를 대여하는 것은 금기어였다. 웨딩드레스를 살 수 없는 재정상태는 집안의 창피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인식이 바뀌었다. 웨딩드레스의 대여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닌 예비 신부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칭찬한다. 그렇다. 시대, 종교, 풍습, 인식에 따라 신부복은 변천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며 위의 내용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은색의 저주라는 이상한 믿음에 나는 시달렸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생각들. 어쩌다 나는 잘못된 믿음(미신)의 노예가 되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허약해진 몸과 마음은 나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끌어당겼다. 네가 떠난 후, 1년 가까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해 이상한 자책을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다행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나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셰익스피어는 “아무 말없이 슬퍼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 맞다. 네가 그리울 때는 터무니없는 망상에서 원인을 찾지 말고 그냥 슬퍼하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아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가끔 혼자 아무 말없이 마음껏 울고 아파하며 저녁을 보낸다.


네가 없는 네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식 날, 우리가 나누어 낀 너의 결혼반지는 이제 내 손가락에 내 결혼반지와 함께 나란히 끼여있다. 쓸쓸한 저녁, 나는 너와 나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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