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YMassart Dec 17. 2022

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두 여자

거울 속에 비친 두 여인의 어색함

Y. Y. Massart, <어색한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남편이 없는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며느리.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죠. 여보 놀라지 말아요. 요즘 내가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나는 3년의 칩거 생활을 벗어던지고 집을 잠시 떠나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친정은 너무 멀고. 그래서 어머니의 집에 오게 되었어요.


11월 19일, 파리의 Montparnasse 역에서 12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어요. 홀로 시댁에 가는 길은 낯설었고 기차 의자에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은 너무 길었죠. 잡생각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셜록 홈스 시리즈> 오디오북을 들으며 마음을 달랬어요.


그렇게 4시간을 달려 도착한 Brest 역. 기차에서 내린 후 걸어 나오며 어머니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천천히 역 밖으로 걸어 나왔어요. 그때 저 멀리 뛰어오고 있는 당신의 어머니를 보았어요. 나를 맞이하기 위해 1시간가량을 차를 몰고 온 어머니는 주차 공간을 찾다가 조금 늦으신 거였어요. 어머니는 같은 모습이었어요. 웃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여보,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바로 어색함이었어요. 혹시 옛날에 내가 당신에게 부탁했던 것 생각나요. 어머니와 둘만 있는 공간에 퍼지는 무거운 침묵의 공기가 싫었던 나는 이렇게 말했죠.


여보, 마트에 갈 때 같이 가줘요.”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있는 공간이 어색했어요. 타인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어머니. 그래서인지 당신의 가족도 어머니와의 소통이 편하지 않았죠. 당신도 마찬가지였고요. 당신은 그 어색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내 부탁을 듣고는 늘 마트에 함께 가줬어요. 그때 정말 고맙게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나와 어머니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의 성격은 뭐라 할까요. 고독을 즐기는 여인, 남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여인, 차가운 성격의 여인.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내 삶에 그 어떤 평가도 잔소리도 없는 시어머니였어요.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고마운 시어머니였죠.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형의 입장은 달랐죠. 어머니의 사랑이 배제된 유년시절을 보낸 당신의 형제들에게, 어머니의 모습은 늘 너무나 차갑고 자기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죠. 그 부분에 대해선 나 또한 당신처럼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았어요. 당신을 너무나 힘들게 했던 불면증의 시발점이 어머니였으니까요.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나였기에, 당신이 떠난 후, 일주일 또는 열흘에 한번 정도 전화로 연락하며 지냈어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어머니와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은 아니었어요. 나부터 예의로 치장된 말뿐인 대화였으니까요. 당신이 했던 역할을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들 때도 많았거든요. 그러니 정상적인 소통은 아니었죠.


시댁에 오기 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주된 생각은 바로 이거였어요.

내가 어색한 감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3년 만의 만남은 나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긴 공백의 시간으로 인해 더 어색할까 봐 두려웠어요. 오기 전에는 마음이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신기하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했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겼어요. 바로 당신. 당신을 잃고 보낸 슬픔, 고통의 시간들은 그 아픔을 겪은 사람만 공감할 수 있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의 어색함을 깨트리고 있어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어머니와의 어색한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어머니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짧은 애로사항을 담은 하소연은 다음 편지에…)


오늘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부엌의 거울 속에 비친 두 여인을 보았어요. 그리고 나는 아들을 잃은 노년의 시어머니와 남편을 잃은 중년의 며느리의 모습을 사진에 남겼어요. 이 두 여인은 아픔을 마음속 저 깊숙이 숨기고 서로의 기억을 끄집어내 당신을 이야기해요.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는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다른 무게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의 고통은 저보다는 가벼웠다는 느낌은 내 착각이겠죠. 그래도 자식이 떠났는데… 고양이가 죽었을 때 더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내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본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너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았어. 나는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안 나오는가 봐!”


차라리 당신의 죽음을 다른 죽음과 비교하는 말을 안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을 했어요. 가끔은 어머니의 이런 솔직함이 나를 슬프게 하네요. 어찌 되었든 우리는 매일 기억 속에 있는 당신을 다시 되살리고 있어요.


여보, 오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었답니다.


“제 마음속에서...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J. M. 바르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 떠오르는 날이네요.


2022년 11월 30일 Plouzané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추신 :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밤마다 치즈 먹으며 한 잔씩 해요. 한 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양이지만 그래도 붉은 포도주를 세 모금 씩 축입니다. 내가 술을 마신다고 하니 놀랐죠.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을 어머니와 하고 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무덤 속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