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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Dec 22. 2022

시어머니가 칸트네!

시어머니의 하루 루틴에 스며들다.

Y. Y. Massart, <일탈의 시간, 월드컵 후반전>,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시어머니와 살고 있는 나의 삶이 궁금한 친정가족에게 나의 일과를 적어서 보냈는데, 오늘 여동생이 카톡에 이런 글을 남겼어요.

시어머니가 칸트네 ~


자신만의 루틴이 있는 사람. 엄격한 자기 관리를 지키는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란 뜻이에요.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하루 루틴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니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삶의 루틴은 3개월, 6개월, 1년이 아닌 평생이란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칸트처럼.



여보, 칸트가 철저히 지키며 산 하루의 루틴은 이랬어요.


새벽 4시 55분 기상, 파이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홍차 2잔을 마시며 5시부터 강의 준비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칸트의 오전 시간은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연구에 몰두했죠. 그리고 점심시간. 무려 3시간 가까이 사람들과 담소와 토론을 나누며 식사를 했다고 하네요.


오후는 칸트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3시 30분엔 산책을 했어요. 똑같은 장소를 똑같은 시간에 매일 산책했어요. 시계보다 더 정확했다는 일화가 탄생할 정도로 칸트의 산책시간은 유명해요. 저녁에는 가벼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하고 밤 10시에 잠들었죠.


칸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정한 루틴을 평생 지키며 살았다고 하네요.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요. 대단하죠.



어머니의 하루 루틴은 다음과 같아요.


어머니는 매일 7시 30분경에 일어나요. 고양이 핼러윈이 기상송을 울려요. 배고프다고 울면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거든요. 핼러윈은 맛있는 아침을 먹은 후 쓰다듬어 달라고 울어요.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핼러윈을 무릎에 앉히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요. 핼러윈도 어머니도 스르르 잠이 들어요. 잠시 쪽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어머니의 아침식사는 8시 30분경에 시작해요. 어머니는 라디오를 틀어 그날의 뉴스를 들으며 식사를 해요. 아침은 간단해요 빵과 버터, 커피 그리고 몇몇 씨앗과 견과류를 우유와 함께 드세요. 식사는 9시쯤에 끝나고 바로 서재로 가 인터넷 와이파이와 컴퓨터를 켜고 밤사이 메일로 연락 온 것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해요.


9시 30분쯤, 어머니는 욕실로 향하세요. 그리고 10시쯤 다시 부엌으로 가 커피와 빵과 버터를 먹은 후 다시 욕실로 들어가세요. 어머님이 욕실에서 나오는 시간은 11시쯤입니다. 11시에는 장을 보러 가고, 내가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하는 동안에 어머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질러진 것이 있으면 치우거나 화초에 물 줘요. 점심은 12시 30분 경이예요.


어머니는 14시에 거실에서 커피와 쵸코렛을 먹으며 신문을 읽어요. 15시가 되면 정원의 일 또는 산책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산책은 17시 30분까지입니다. 17시 30분은 차를 마시는 시간이거든요. 차를 마시며 신문을 마저 읽죠. 그리고 차를 마시는 시간은 고양이 핼러윈이 어머니의 무릎에서 간식을 먹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리고 신문을 읽다가 다시 스르르 눈을 감고 쪽잠을 자는 시간이에요.


저녁은 7시 30분에 먹어요. 저녁 식사가 끝나면 컴퓨터 또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시간이에요. 잠시 거실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시죠. 밤 10시가 되면 컴퓨터, 인터넷 와이파이를 끄고 어머니의 하루가 마감됩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없는 밤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하루도 바뀐 적 없는 루틴이에요.



여보, 과연 어머니만 칸트일까요?


나는 당신의 시간들을 생각해 봤어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지키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 당신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고, 정해진 시간에 아침 식사를 했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했어요.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일했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었죠. 오후에도 정해진 시간에 일했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했어요. 출퇴근을 위한 교통지옥의 시간도 매일 견뎌내야 했죠.


우리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의 시간에 갇힌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죠. 당신도 그랬고요.


당신은 은퇴 후의 삶을 꿈꾸며 그 시간들을 버텼어요. 하지만 당신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죠. 여보, 요즘 사람들은 미래의 삶보단 오늘을 잘 살자고 말해요. 우리도 미래를 위한 계획에 맞춰 사는 삶보다 오늘을 더 즐기며 사랑하는 삶을 선택했으면 좋았을걸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또 늦은 후회죠.



여보, 내가 어머니의 시간에 작은 돌을 하나 던졌어요.


나는 어머니의 느림의 미학을 실천 중이에요. 나는 그냥 어머니의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마시고, 산책하고, 잠자리에 들어요. 나의 우울한 시간에 어머니가 스며드는 것보단 평화롭게 살고 계신 어머니의 시간에 내가 스며들어 평온을 선물 받고 있죠. 요즘 나는 내 머릿속을 비우는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과 핸드폰에서도 해방된 경험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매일, 내가 어머니의 시간을 어기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밤 9시예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치우면 9시가 되고, 나는 월드컵 후반전을 봐요. 나의 이 행동이 어머니의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느낌이 들어요. 나에게 작은 일탈의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말이죠.


올해, 내가 당신의 가족 구성원이 되어 보낸 세월이 벌써 22년이 되었네요. 그런데 나는 당신의 가족이 모였을 때 TV를 보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내가 어머니 집에서 감히 매일 TV를 봐요. 신기한 것은 어머니도 가끔 내가 TV를 보는 시간에 함께 한다는 거예요. 축구를 보시는 것은 아니에요. 책 또는 신문을 읽거나 고양이 할로엔을 쓰다듬으세요. 그러다 힐끔힐끔 몇 장면을 보시죠.


평생 축구를 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에게 나는 계속 말해요.

“오늘 경기는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의 대결입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 중 등번호 10번 선수의 이름은 메시에요. 저 사람이 제일 유명한 축구 선수예요.”

“어머니 프랑스 선수들 중 가장 잘하는 선수의 이름은 음바페예요.”

“지금 음바페가 골을 넣었어요.”


그 결과 어머니는 이제 Messi 선수를 알게 되었고 Mbappé 선수도 알아봐요.

나는 당신과 함께 소리 지르고, 응원하며 월드컵을 봤는데 지금은 어머니와 조용히 후반전만 보고 있어요.

여보, 나는 매일 이 일탈의 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답니다. 잘했죠.

작은 변화, 작은 자극에 만족하며 오늘을 살아요.



아! 좋다!”


칸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하네요. 독신이었던 칸트는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살았으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며 ‘좋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요? 부럽네요.


칸트가 살던 시대에 평균 수명은 50살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칸트는 80세에 생을 마감했죠. 오늘은 백세시대라고 말해요. 그런데 당신은 48세에 생을 마감했죠. 게다가 불쌍한 당신은 그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죠.


오늘,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아마도 이 말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을 해봅니다.

억울해!”


아! 아니에요. 우울한 생각은 금지!

여보, 오늘도 안녕!


2022년 12월 1일 Plouzané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추신 :

어제저녁에 나는 어두운 차고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질렀어요. 고양이 고야브가 생쥐를 잡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여보 정말 정말 너무 끔찍했어요.

우리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 생각나네요.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고양이 스쿠아늄이 생쥐를 잡아서 입에 물고 정원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내가 비명을 질렀죠. 그때 웃으며 나를 진정시키며 끌어안아주던 당신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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