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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Dec 29. 2022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몇 분

고양이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의 소중함

Y. Y. Massart, <쓰담쓰담>,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어제저녁에 일기장을 뒤적였어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나의 아픔이 표현된 글이 가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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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일,

우당탕,,, 나는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머리는 문에 부딪쳤고, 왼팔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이 나를 덮쳤다.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서러움이 나를 울렸다. 부어오른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무거운 침묵만 흐르는 집에서 나는 울부짖었다. 남편이 떠난 지 9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나는 내가 다쳤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무 아프니 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없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2021년 1월 15일,

추운 겨울, 오늘도 밤이 찾아왔다. 집은 보일러가 따뜻하게 온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춥다. 외로운 밤은 너무 춥다. 이제 이 추위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살갗을 파고드는 외로움은 너무 추워 나를 덜덜 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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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걱정 말아요. 2022년 12월 3일, 지금의 나는 그동안 <시간>이란 치료제를 열심히 복용한 착한 환자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 결과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던 슬픔도 줄어들었어요. 당신을 잃고 잘 사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마음, 당신을 배신하는 것 같았던 마음(죄의식)도 줄어들었고요. <시간>은 나의 상처에 조금씩 건강한 딱지를 생기게 해 줬어요. 지금은 잘 아물고 있는 이 딱지가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중이에요. 당신에게 가는 날까지 피 흘리는 고통의 시간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거든요.




<줬다 뺐다!>
오늘은 이 말에 꽂혔어요.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삶을 줬다 빼앗고, 오늘을 줬다 빼앗고, 당신을 나에게 줬다 빼앗고...


여보, 고양이 핼러윈이 머지않아 당신에게 떠난다고 하네요. 우리는 또 한 번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5년 전에 어머니의 가족으로 입양된 핼러윈은 뒷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어요. 수의사는 길냥이 시절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 같다고 말했죠. 불쌍한 핼러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 보다 더 많은 애교를 부리며 우리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핼러윈의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은 핼러윈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떠났어요.


어머니는 핼러윈이 앓고 있는 병을 설명해주셨는데 사실 반은 이해했고 반은 이해한 척했어요. 아! 불어실력은 계속 감퇴하고 있네요. 당신이 있었으면 어머니의 말씀을 쉽게 다시 설명해 주었을 텐데. 어찌 되었든 결론을 말하면, 지금 핼러윈은 잘 먹지를 못해요. 먹지도 못하면서 자기 밥그릇 앞에서 매일 울어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핼러윈의 귀에 약을 발라줘요. 수의사가 처방해 준 약인데, 정신과 치료약이라고 하네요. 고양이의 뇌에 무슨 자극을 주는 약(진정제? 제대로 이해 못 했어요)이라고 하네요. 그 약을 바른 다음 날 아침에는 집안이 굉장히 시끄러워요. 아침부터 밥 달라고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울거든요. 그 약 덕분에 2일은 잘 먹고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조금씩 약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약은 고양이의 간을 상하게 해, 자주 사용할 수 없어서 안타깝네요.


조금이라도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우리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어머니는 계속 새로운 사료를 사들이고 있어요. 그 덕에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고야브만 신났어요. 매일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죠.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쓰담쓰담. 이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요. 핼러윈이 죽는다는 것은 슬프지만 이렇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 시간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잘 알고 있답니다.




우리에게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좀 주지!


나는 핼러윈에게 정성을 쏟으며 위의 말을 자주 생각한답니다.


당신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시간. 당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차릴 수 있는 시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당신과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우리에게 줬다면 감사했을 텐데.


부질없는 생각이라고요. 알아요. 그래도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요. 나는 당신에게 그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었잖아요.


나는 가끔 야속한 하늘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려요.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단 몇 분만이라도 주지!”라고.




2022년 12월 3일 Plouzané에서

늘 변함없는 아내가 말합니다.

Je t’aime!”

(내가 당신에게서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해요.)





추신

며칠 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왜 어린아이가 죽어야 할까요? 저 세상에선 왜 선량한 사람을 먼저 데려갈까요? 정말 불공평해요! 푸틴 같은 사람은 데려가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 웃었어요.

“저 세상에서도 푸틴이 무서워서 그래! 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못 데려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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