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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Jan 16. 2023

가족이 유지해 오던 관계의 발랜스가 깨졌다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

Y. Y. Massart, <나도 먹고 싶어요!>,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가족은 늘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하는 관계인 것 같아요. 어머니와 형의 관계가 좀 소홀해졌어요. 며느리의 입장에서 둘의 관계에 직접 끼어드는 것은 조심스러워, 그저 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만 하고 있어요. 형은 내가 당신의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인지 나를 ‘내 여동생(ma petite sœur)’이라고 부른답니다.


어머니는 자꾸 나에게 당신의 형이 대화를 거부한다고 이야기하시네요. 대화가 단절된 모자. 하지만 당신의 형은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해요. 물론 짧은 단어로 구성된 몇 마디를 한 후 바로 손녀에게 전화를 넘깁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를 길게 나누고 싶은데 말이죠. 여보, 나는 어머니의 서운함도, 당신 형의 불편함도 모두 이해가 돼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가 없네요.


갑작스러운 당신의 죽음 후, 유지되던 가족관계의 발랜스에 금이 간 느낌이에요. 어머니는 큰 아들에게 더 의지하려 하고, 당신의 형은 순식간에 외아들이 된 것이 심적으로 부담스럽고. 여보, 당신이 빠진 세계에서 가족관계의 균형을 새로 찾아가는 데는 이겨내야 하는 고충이 있는 것 같아요.



“왜, 나를 미워하는지 알아야 고칠 수 있을 텐데. 말을 안 해!”

요즘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이에요.


여름 바캉스 때 작은 다툼이 있었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아들이 문을 ‘쾅’하고 닫아서 화를 냈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기억하는 것과 당신의 형이 기억하는 그날의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죠. 내 생각으로는 그 작은 행동 하나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여름 바캉스를 함께 보내며 이런저런 것들이 쌓인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3주는 너무 길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들이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기다리면 아들은 다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텐데. 어머니에게 조바심이 생긴 것 같아요.


당신의 형은 남에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내가 당신의 형에게 해줄 수 있는 동생의 역할은 당신의 30% 정도밖에 안 되고, 어머니와 갈등이 있을 땐 당신과 함께 어머니에 대해 험담을 쏟아내고 앙금을 시원하게 날려 보냈는데, 그 과정이 사라지니 외롭고 힘든 것 같아요.


어머니는 하루빨리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들에게 편지(메일)를 보냈다고 하네요. 나는 어머니가 쓴 편지의 내용을 듣고 속으로 외쳤어요!

“아이코, 어머니!”


어머니가 나에게 설명한 편지 내용은 대충 이래요.

아들아, 네가 태어나고 한 일 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너를 침대 밑에 눕히고 나는 침대 위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계속 울었다.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달래줬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너는 하루 종일 울었다. 아마 너의 불같은 성격은 그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시작된 것 같다.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서투른 사과의 편지를 본 적이 있나요. 이건 사과인지 아님 꾸짖고 싶은 것인지? 어머니는 정말 소통에 어설픈 분이에요. 내가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도 없고 답답했어요.


어찌 되었든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어요.

“근데 답장이 없어!”


무슨 답장을 원하신 것일까요? 어머니는 ‘너는 나를 닮았으니 나를 이해할 수 있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어머니가 놓친 것이 있어요. 바로 사랑표현입니다.


여보,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형이 어머니의 다혈질 성격을 물려받은 건 맞아요. 하지만 어머니와 다른 점이 있죠.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사랑표현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면 얼른 자신의 품에 안아 진정시키는 아빠예요.


당신 형제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건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어머니의 표현들,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죠.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아들과 이제 와서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어머니.


그런데 아들은 목구멍에 돌이 하나 콱 박혀 있는 느낌이라고 하네요. 당신의 형은 나에게 그러더군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전화를 걸 때마다 힘들다고.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불편한 심정을 몰라요.


편지를 보내며 아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 기대했던 어머니는 실망했고, 편지를 받은 아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더 어색한 관계가 되고 말았네요.


다행히 당신의 형이 2주 동안 터키로 떠났어요. 이번에는 형수도 함께 떠났고요. 1주일은 세미나 1주일은 여행이라고 하네요. 형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WhatsApp의 가족계정에 올려주고 있고요.


그 사진에 어머니는 댓글을 남기고 있는 중이랍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당신의 형은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볼 겁니다. 어머니가 원하는 대화는 아니더라도 말은 하며 살 거예요.


내가 바라본 당신의 형과 어머니는 적당한 관계의 경계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부모자식 관계이니 서로 참으며 살아야죠. 그러니 당신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여보, 어머니는 왜 인간에게는 사랑표현이 어설플까요? 고양이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하시는데…


아! 그리고, 당신이 떠난 후, 형은 잠을 자다 식은땀을 흘리며 깬다고 했는데 요즘은 악몽에 시달린다는 말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네요.

여보, 안녕!


2022년 12월 5일 Plouzané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추신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어요.

“어머니, 내가 봤을 땐 갱년기인가 봐요. 남자들도 갱년기를 앓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니야, 자기 아내와 아이들 하고는 말도 잘하고 행복해 보여.”


어떡해요 여보, 어머니는 아들의 화목한 가정을 질투하시는 것 같아요. 할 말을 잃은 나는 이렇게 말했죠.

“다행이네요. 가벼운 갱년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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