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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Jan 18. 2023

파리 호텔 사건

며느리의 도전장에 놀란 시어머니

Y. Y. Massart, <파리!>, 2022년 11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어머니가 조금 속상하실 것 같아요. 저 때문에요.


어머니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놓고 있던 그날의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어요. 일명 <파리 호텔 사건>. 당신은 금방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죠. 결혼한 지 15년 만에 내가 시댁의 한 친척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건이요.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도시. 그래서 일까요. 파리는 외국인은 물론 프랑스인들도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예요. 파리에 살면 그 어떤 연락도 왕래도 없던 사람들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옵니다. 처음엔 숙식만 부탁합니다. 그리고 파리 여행을 함께 해주길 바라죠. 가이드 역할을 원합니다. 특히 미술사 전공을 한 나에게 특별 가이드 역할을 기대하죠.


부탁도 다양합니다. 주말, 일주일, 열흘, 이주일 그리고 한 달. 어디에서 툭 튀어나오는 학연, 지연, 혈연들의 부탁을 당신은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죠. 열심히 절약을 하며 살면 어느 날 누군가가 와서 우리의 돈을 쓰고 갑니다. 이렇게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며 차츰 스트레스가 쌓여가죠. 그래서 생긴 스트레스를 <파리 바캉스 증후군>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당시 나는 <파리 바캉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어요. 특히 한 가족, 결혼 후 처음에는 열심히 반갑게 맞아줬어요. 그런데 그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나에게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하더군요.


내가 가장 싫었던 부분은 바로 그들의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들은 왜 우리 집에서 이 말을 늘 했을까요?

“우리는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힘들어!”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왜 나한테 돈 이야기를 하는지?


결국 그들이 파리 여행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최대한 그들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했어요. 그들의 여행인데 왜 당신의 지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버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위해 지갑을 열어야 했을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이었어요.


‘오고 가는 정’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강요에 직면하면 그리 유쾌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는 지켜야 할 도리라고 포장해 강요하죠. 특히 시댁 식구에게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야만 할 때요. 내가 그랬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참다못한 나는 당신 사촌에게 돌려서 말했어요.

“우리는 이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은행빚을 갚으려고 몇 년째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 한 번 해보세요. 그렇게 돈이 없으면 단 몇 년이라도 여행을 줄여 보세요. 그러면 집을 사는데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어요.

“난 그렇게는 못 살아요!”


와! 그 말에 내 머리가 ‘띵~’ 하고 울리더군요. 그리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어요. 그 이후 그 가족이 온다고 하면 스트레스는 급 상승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죠.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그럼 어떡해 연락이 왔는데...”




“착한 여자 콤플렉스 아님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인가 내가 왜 그들에게 도리를 지키려 노력하지?”

그때 나에게 든 생각이었어요.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고 살면 언젠가는 곪아터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나의 염증이 곪아터지기 직전에 대책을 마련했던 겁니다. 그게 바로 <파리 호텔 사건>이었죠. 싫으면 싫은 사람이 자리를 피하라! 그래서 내가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죠.


처음, 당신의 반응은 놀람 그 자체였어요. 나도 예상한 반응이었어요.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는데, 아내가 호텔로 간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시가족에게 <엘로카드>를 꺼내든 아내.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당신. 그런데 나는 당신을 설득시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어요. 바로 당신의 <명절 증후군>. 당신은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시댁에 가기 한 달 전부터 힘들어했어요. 어느 해에는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복통에 시달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나의 스트레스를 당신의 명절증후군에 비교해 설명했죠. 그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리고 당신은 나의 고충을 이해해 줬고 우리는 그 어떤 말다툼도 없었죠.


당신은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청소도 하지 마, 장을 볼 필요도 없어 그리고 침구를 바꿀 필요도 없어. 어차피 레스토랑에 가서 먹을 거니까. 그냥 편안히 갔다가 와!”


당신은 혼자 손님을 맞이했고 그들에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호텔에 갔다고 말했죠. 사실이었어요. 그 시절, 나는 쫓기듯 글을 쓰고 있었어요. 후에 출판사의 계획이 틀어져 그 책은 출판을 못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모르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죠.


그들이 떠난 후, 당신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웃으며 말했어요.

“이제 들어와도 돼!”



“그때 왜 그랬니?”


오늘 어머님이 나에게 물었어요.


어머니는 그 가족을 참 좋아해요. 그러니 내 행동을 이해하기 힘드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세요. 그들은 어머니의 집에 자주 가죠. 어느 때는 한 달가량 머문 적도 있으니까요. 물론 어머니가 모든 식비를 부담했죠. 어머니는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분이니 나는 어머니의 삶에 뭐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까지 어머니에게 하던 수법을 적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왜 그랬냐고 물으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말했죠.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나에게 돈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이었다고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즉시 그들을 이렇게 옹호하시더군요.

“게네들이 금전적으로 좀 어려웠어!”


난 어머니에게 그동안 내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말을 꺼냈어요.

“어머니, 그래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어요. 그들이 우리 집에 몇 번이나 온 지 아세요? 그리고 남의 집에 갈 때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요. 그들은 한 번, 아주 작은 병에 든 딸기잼, 사과잼을 들고 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레스토랑에서도 한 번도 돈을 낸 적이 없고요.”


어머니는 다시 이렇게 말했어요.

“게네들이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그래!”


“아니에요. 만약에 그렇다면 레스토랑을 가고 싶다는 말을 넌지시 하면 안 되죠. 그리고 그들은 돈이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돼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그들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들. 겨울 스키장, 암스테르담 여행, 뉴욕 여행 등등.”

나의 대답에 어머니는 할 말을 잊으셨어요. 사실 어머니도 그들의 블로그를 자주 보시니까요.


나는 어머니께 이렇게 내 마음을 설명했어요. 만약에 그들이 파리를 다녀간 후, 당신에게 고맙다는 메일을 보냈거나 가끔 당신의 안부를 물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무엇보다 나는 그들이 당신을 호구로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고요.


어머니는 즉시 이 말을 했어요.

“아니야! 네 남편과 그들은 친했어!”


“저도 알아요.”

나는 어머니에게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친한 것과 호구로 취급하는 것은 다르죠.


어머니에게 강하게 항변한 후, 내 마음이 시원한 게 아니라 조금은 미안했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사랑하는 조카가족인데.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말하며 어머니의 기분을 달랬어요.

“어머니, 그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그들이 사는 방식과 내가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에요. 각각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의 목표도 의미도 모두 다르니까요.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도 알아요. 이렇게 말하는 저 또한 그 누군가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고 또 하며 살 것이란 것을요.”


어머니는 그냥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나는 어색해서 이렇게 둘러댔어요.

“어머니, 그때의 나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어요. 저는 글을 써야 했거든요.”


순간 어머니의 눈빛이 바뀌며 이렇게 말했어요.

“글을 쓰는 것 때문이면 너는 2층에서 쓰고. 그들은 1층에서 있었으면 됐을 텐데!”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않았어요. 나의 행동에 대한 연유를 그냥 그 정도의 선에서 표현하고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나간 옛날 일인데, 당신도 내 곁에 없는데, 지금에 와서 괜히 어머니와 말싸움으로 번지면 안 되잖아요.


어머니는 자신이 아끼는 가족과 며느리가 잘 어울려 살기를 바라셨을 텐데, 내가 그렇게 못했죠. 게다가 지금도 그들을 여전히 거부하는 내 마음을 내비쳤으니 많이 서운하셨을 거예요. 어쩔 수 없죠. 내 마음이 안 움직이네요.



여보, 그때를 떠올리면, 당신은 정말 놀라운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나의 행동이 충격적이어서 다툼으로 번져 신경전으로 치달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당신이 나의 말을 차분히 들어준 바람에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의 의미가 변질되지 않았어요.


여보, 그땐 정말 정말 당신에게 너무나 고마웠어요. 내 남편이 남의 편이 아닌 온전히 내편이란 것을 느끼게 해 줬어요.


2022년 12월 6일 Plouzané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추신

하나 더 기억나네요.

그 <파리 호텔 사건>은 소문이 퍼졌고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죠. 몇몇 시가족은 나의 메시지를 알아차렸고, 빈손으로 오던 당신 친구는 술을 선물로 가져오기도 했고요.


그때 당신은 나에게 그랬죠. 외사촌 누이도 나의 마음을 알게 됐으니 이제는 걱정 말라고. 그런데 나는 절대로 아닐 거라고. 기다려 보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파리 호텔 사건>이 있고 두 달 후, 그들은 다시 당신에게 메일을 보냈죠. 주말(금토일)에 막내딸과 함께 와서 파리의 박물관 전시회와 콘서트를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처음으로 이런 답장을 보냈어요.

“안녕,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서 너희를 맞이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하지만 파리에 오면 연락해, 시내에서 만나 커피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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