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YMassart Mar 08. 2023

뇌는 바빠요, 인간을 감정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바빠요

니체의 인간은 낙타, 사자, 아이

Y. Y. Massart, <헤라클레스와 사자의 싸움>, 2022년 10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인간은 아픈 기억을 피할 수 없는 존재란 것이 짜증 나요. 잊고 싶어서 몸부림치지만 자꾸 다시 떠올라 괴롭힐 때는 과거의 아픔에 끌려다니는 나 자신이 싫어져요. 여보, 저는 열흘 동안 감기몸살처럼 마음 앓이를 하고 일어난 후, 이런 나 자신이 지긋지긋해 당신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중이랍니다.


인간의 뇌는 일을 참 잘해요.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인간에게 열심히 자극을 주고 인간은 또 그것에 반응하죠. 여보,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는 왜 감정의 노예가 된 것일까요? 내 머리뼈의 안쪽에 위치하는 뇌의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요?


나의 기억을 담당하며 분노, 슬픔, 기쁨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해마체(Hippocampus). 나의 감정 조절, 의사결정, 사고력, 문제 해결을 담당하는 전두엽(Frontal lobe). 나의 불안, 공포, 분노, 스트레스 등의 강한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Amygdala).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뇌의 구조와 기능 중에 어느 네트워크의 전파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어두운 감정에 굴복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네요.


인간은 감정의 낮(빛)과 밤(어둠)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인생의 종점을 향해 달려가죠. 그런데 밤의 세계가 훨씬 더 길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문제겠죠. 어쨌든 오늘도 횡설수설하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우연히 읽게 된 한 기사가 나를 아프게 했어요.


평소 건강했던 50대 가장은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뇌출혈로 인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는 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억울한 젊은 가장의 죽음, 뇌사 판정, 남겨진 유족의 아픔. 나는 타인의 아픈 사연에 공감했고 그들의 고통에 감정이 이입되자마자 나의 아픈 과거가 되살아났어요.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잘 살고 있다고, 나 자신을 응원하다가도, 뇌, 저 깊은 어두운 공간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었던 ‘죄책감’이란 감정을 자극하는 의식이란 전파에 나는 즉각 반응하죠. 그리고 아파하죠. 이 세상에는 나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자극(불청객), 즉 아픈 사연이 너무나 많아요.


여보, 내가 ‘죄책감’이란 마음 앓이를 할 때는 당신을 꿈에서 만나도 행복하지 않아요. 꼭 나를 탓하기 위해 당신이 찾아오는 것 같거든요. 악몽이죠. 알아요.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아요. 꿈속의 당신은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란 것을 말하고 싶은 거죠. 나 스스로 나를 탓하니, 꿈속의 당신도 나를 탓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고요. 이론으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악몽에 시달려요. 인간이니까요.


여보, 나는 당신에게 미안해서 힘들고 당신이 나를 미워할까 봐 힘들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 하나하려고요. 내가 마음 앓이를 할 때는 나에게 찾아오지 말아요. 나의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정신세계는 변한 게 없어요.


19세기에 살았던 니체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세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는 낙타, 사자, 아이의 단계로 비유해 설명했지만 모두 인간의 정신세계를 말하는 것이에요.


인간(낙타)의 ‘인내심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좋게 포장해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을 낮추는 행위였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였어요. 누군가에게서 강요된 삶을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죠.


하지만 용기 있는 인간(사자)이 되면 삶이 달라져요.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방해물을 치우려고 노력하죠.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짐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으로 변하죠. 그는 항변할 수 있어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하죠.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나는 원해요!'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죠. 그 단계를 거치면 인간(아이)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어요. 새로운 출발이죠.


니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논했어요.

자신의 삶을 심도 있게 고민할 수 있는 용기.

적극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미련한 존재인 것은 변하지 않았어요. 인간은 변함없는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그리고 그 짐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자신이란 진실도 19세기에 살든 21세기에 살든 변하지 않네요. 그럼에도 어리석은 나처럼 감정의 노예가 되어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끙끙 앓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늘 존재하죠.


그런데 여보, 내가 짊어진 이 죄책감은 과연 누구를 위한 짐일까요?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위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 감당하기 힘든 짐의 무게를 덜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당신에게 미안해서!"라고 말하지만 하늘의 별이 된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외치는 것도 핑계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아요. 그저 나의 미련함.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내가 겪어야 하는 이 고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고통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오늘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낙타인 것 같아 속상하네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래도 말하고 싶어요.‘나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언젠가는 이 노력의 결실을 맺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는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쓸 거예요.

“여보, 이번에는 마음 앓이가 하루 만에 나았어요.”라고.


아! 그리고 이것도 당신에게 약속하고 싶어요. 꿈에서 늘 웃는 모습으로 당신을 기다리도록 노력하겠다고요.



2023년 2월 6일

좀 더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아내가




추신

여보, 우리의 뇌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악몽이라고 하네요. 인간의 뇌는 주기적으로 재정비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일들을 재생산하거나 처리한다고 해요. 그때 악몽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욕망이나 우려를 떠올리게 해 각인시키는 거래요. 그러니 악몽은 뇌의 재정비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더라고요.


나는 나의 뇌의 재정비를 위해 악몽은 필요 없는데... 오히려 주기적으로 재정비할 때 과거의 악몽은 모두 삭제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악몽이 없는 세계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요.


아~! 악몽도 기억의 일부라 삭제하면 치매에 걸리나?





                    

                     

매거진의 이전글 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BTS 팬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