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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Mar 03. 2023

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BTS 팬심

스트랭글러스(Stranglers)의 열렬한 팬이었던 남편

Y. Y. Massart, <Life Goes On / Spring Day (BTS)>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작년 12월 초, 그날은 햇빛이 거실 안 깊숙이까지 들어와 따뜻하게 덥히고 있었어요. 나는 소파에 앉아 찬란한 빛줄기의 매력에 푹 빠져 ‘햇빛멍’을 하고 있었어요. 햇살은 적당한 온도로 나의 신경세포를 자극했고 내 마음에 스며들어 나를 감싸고 토닥이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내 앞에 있는 탁자에 무엇인가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선물!”


선물이란 말에 나는 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순간 놀랐어요. 주간 문화 잡지 Télérama 표지에 방탄소년단의 사진, 동시에 내 시선에 들어온 문구 <왜 한국이 매혹적인가, POURQUOI LA COREE FASCINE>. 나는 속으로 외쳤어요. “와!!! 정말 미쳤다.” 햇살의 따뜻함 보다 더 뭉클하고 뜨거운 감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어요.


당신도 방탄소년단 알죠. 내가 당신에게 그들의 노래를 들려줬잖아요. 그런데 여보, 당신이 떠난 후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그들은 세계적 슈퍼스타가 되었어요. 그들에 대한 기사는 프랑스에서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어요. 게다가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체험하고 있어요. 뭐냐고요? 파리 지하철을 타면 종종 프랑스인들이 방탄소년단 가방을 메고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또 어느 날은 버스에 탄 한 청년이 내 옆에 앉아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고 있었어요. 그날은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기분이 묘했어요.


나의 파리 시내 나들이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럼에도 마주치게 되는 방탄소년단 팬들.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을 힐끔 바라보며 신기해했죠. 그랬는데 작년 12월 초, 그날은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동네 슈퍼에서 사 온 주간 잡지에 실린 방탄소년단의 이야기. 내가 얼마나 놀라고 뿌듯했겠어요. 나는 ‘대박, 소름!’을 외칠 정도로 그들의 놀라운 글로벌 인기를 실감하는 날이었어요.


여보, 팬이란 무엇일까요?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두터운 팬덤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을 아미라고 부르죠. 팬이 없는 가수는 존재할 수 없고 가수 없는 팬도 존재할 수 없어요.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의 팬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느낀다고 해요. 팬덤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서로 격려하죠. 노래의 가사를 통해 위로받고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죠.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작은 행복이 쌓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네요.


방탄소년단에게 애정을 가진 아미는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해요.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후, 나의 인생관이 바뀌었어요.”라고.



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팬심!

여보, 그 누군가의 팬이 되면 마력에 홀리는 것일까요. 당신은 영국 밴드 스트랭글러스(Stranglers)의 팬으로 평생 살다 떠났으니 잘 알 것 같네요. 1985년 4월 27일, 우연히 보게 된 콘서트. 그날을 기점으로 당신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늘 말하고 다녔죠. 여보 그거 알아요. 당신의 형은 매년 당신의 생일날이 아닌 4월 27일에 꼭 연락을 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내 동생의 진정한 인생은 이날 태어났어.”라고요.


스트랭글러스(Stranglers)를 향한 당신의 팬심은 유별났죠. 14살에 우연히 라디오 방송국에 보낸 사연이 당첨되어 선물로 받은 공연 티켓 한 장. 운명적으로 날아온 그 티켓은 당신이 스트랭글러스(Stranglers)의 공연을 평생 관람하게 만들었어요. 인생은 참 신기해요.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으니까요.


생전 처음 공연장에 들어갔던 14살 소년. 그날의 추억을 회상할 때마다 당신의 눈빛은 한결같이 빛났던 거 알아요. 우리는 가끔 당신을 놀리며 이렇게 말했죠.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다른 그룹과 별로 다른 것도 없는데!” 그때 당신이 흥분하며 늘어놓았던 말들과 표정, 정말 재미있었어요.


열렬한 팬이었던 당신은 스트랭글러스(Stranglers)가 파리에서 공연할 때마다 표를 샀고 우리는 공연장으로 향했어요. 사실 나는 그들의 노래보다 그들의 공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영국에서 온 팬들은 특히 눈에 띄었어요. 그들은 화려한 문신을 자랑하기 위해 웃통을 벗었고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뛰며 신나서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맞아요. 영국 팬들은 입고 온 옷부터 헤어스타일까지 모두 예술가들 같았어요. 그들의 열광과 환희로 콘서트장은 더욱더 뜨거워졌죠. 반면에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보다는 얌전한 편이었죠.


당신은 나를 위해 늘 앉는 자리를 예약했어요. 나는 매번 당신을 위해 콘서트를 동영상 카메라로 찍었죠. 그렇게 담아낸 영상은 당신이 콘서트장에서 느꼈던 행복한 감정을 더 오래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나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한 것이 많았네요. 아참, 당신 기억나요? 올랭피아(L'Olympia)에서 공연할 때, 그날은 촬영금지였는데 내가 몰래 찍다가 쫓겨날 뻔했던 거요. 정말 마음 졸이는 날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되었네요.


아~! 나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하나 있어요. 당신이 사놓았던 스트랭글러스(Stranglers)의 공연 티켓. 당신도 기억하죠. 2019년 11월 27일, 파리 올랭피아(L'Olympia)의 공연이었죠. 그런데 나 못 갔어요. 도저히 혼자 갈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망설였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공연 내내 울 것 같았고 공연 후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힘들 것 같았어요. 당신이 산 마지막 티켓이었는데 미안해요.


여보, 나는 당신처럼 열정적인 팬의 삶은 아니어도 조금은 당신의 삶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나의 슬픔에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달려라 방탄>이니까요. 나는 <달려라 방탄>을 보며 그들의 삶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고 나를 웃게 해주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극적인 것이 없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겸손한 이미지도 좋았고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워서 좋았어요.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은 그들의 팬 아미가 왜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하는지 알 거 같았어요. 나도 그들의 가사에 위로를 받았거든요.


여기 Life Goes On의 가사를 당신에게 들려줄게요.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혼자 가네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하루가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또 하루 더 날아가지



오늘 편지의 마지막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문장을 소개할게요. 신기하게도 방탄소년단의 삶과 아미의 삶을 요약한 것 같아서요.

그들은 스스로 연출하고 스스로 꾸며낸다. 나는 그들 가까이 있으면서 삶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슬픔을 치료해 준다. 나에게 그들은 나의 슬픔을 고쳐주는 의사들이고 나로 하여금 인간에게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겸손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고 동정한다.



2023년 2월 26일

당신의 영원한 팬,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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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방탄소년단의 사진을 찬찬히 본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어요.

“근데 남자들인데 화장했니?”


내가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네! 화장했어요.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근데 어머니, 어머니는 페미니스트를 옹호하시잖아요.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왜 여자만 화장해야 해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어머니의 짧은 대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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