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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Feb 28. 2023

뿌리 뽑힌 나무의 삶

나는 쓰러졌다, 하지만 괜찮다!

Y. Y. Massart, <나무, 삶의 흔적>,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바닷가에서 쓰러져 있던 한 그루의 나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내가 그 나무를 만난 그날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유난히 따가웠어요.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바닷가 둘레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자연에게 위안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요. 사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힐링을 선물하지만 바쁜 인간은 그 선물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더 많죠. 나는 바쁘지도 않으면서 왜 그랬냐고요? 어리석어서요!


그날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느끼지 못한 자연의 소리와 향기에 취해있었어요.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바라본 파도의 반복적인 움직임, 그리고 탁 트인 풍경은 나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요.


그렇게 걷다가 내 눈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는 쓰러져 있었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어요. ‘너는 태풍이 거세게 몰아쳤을 때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니?’라고 속으로 물어보았어요. 나무는 넘어지면서 큰 바위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지만 오히려 그 바위 덕에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뿌리의 1/4은 굳건히 땅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나머지 3/4 정도는 뿌리가 뽑혀 공중 부양을 하고 있었어요. 만약에 그 큰 바위가 없었다면 뿌리가 모두 뽑힐 뻔했어요. 처참한 몰골로 바위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나무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많이 아팠지, 너도 힘들었겠다. 외롭겠다.”

나는 나무에게 속삭였어요.


그동안 수많은 풍파가 몰아쳐도 잘 버티며 살았을 텐데. 어느 날 불어닥친 거센 바람 때문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경험했을 거예요. 주변의 모든 나무들은 멀쩡히 튼튼하게 잘 버티고 서 있는데 혼자 참담한 모습으로 쓰러진 나무는 얼마나 아프고 당황했을까요. 쓰러진 후 혼란스럽고 불안했을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하지만 나무는 공중에 떠있던 뿌리를 땅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쓰러져 기울어진 몸통에는 새로운 가지가 자라났고 그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것을 볼 수 있었어요. 홀로 살 방법을 터득한 나무는 쇠약해지기 전에 새로운 뿌리를 키우면서 땅속의 수분과 영양분을 끌어모으고 힘을 낸 것 같아요. 조금씩 자라난 잔가지는 점점 더 굵어질 거고 녹색잎을 수없이 만들어내며 태양빛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 무단히 노력을 할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여보, 나무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속삭인 줄 알아요.

쓰러져도 괜찮아. 버티며 노력하면 살아지게 돼!”


내 마음속에서 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독백을 하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요. 여보 참 신기하죠. 예전 같으면 쓰러진 나무를 봐도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어요. 자연은 수많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와 깨우침을 던지고 떠나는 것 같아요.  


여보, 홀로 쓰러져 있어야 하는 나무는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나무들이 부러울까요? 아마 그럴 거예요. 하지만 다시 태풍이 몰아치는 날에는 그 나무들이 쓰러진 나무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나무들은 거센 바람에 저항하며 혹시라도 쓰러질까 봐 아니면 부러질까 봐 두려울 테지만 이미 쓰러진 나무는 오히려 마음이 편할 거예요. 가만히 바위 위에 누워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되니까요. 이제 쓰러진 나무는 웬만한 고난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여보, 나는 인생은 끊임없는 산, 골짜기, 절벽을 넘어야 하는 긴 여행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아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나를 늙게 만든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찌 되었든 인생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작은 언덕을 넘을 때도 힘겨워하고 때로는 낮은 골짜기를 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희열을 느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끝없는 절벽으로 떨어졌을 땐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회생불능한 삶에 도달한 것 같은 마음으로 괴로워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것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는 것을 뜻해요.


요즘 나는 가끔 더없이 작고 초라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여보 그거 알아요. 내가 변했어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평가하지는 않아요. 비록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주 작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적합한 세상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무슨 말이냐고요. 내가 사는 세상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상관없다는 뜻이에요. 더 이상 외부에서 날아오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편안하게 내 마음대로 살다 가려고요.  


여보, 나는 쓰러진 나무처럼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여보, 내 모습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졌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여보, 내 작은 세상에선 외로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나 또한 쓰러진 나무처럼 새로 나기 시작한 잔뿌리를 땅으로 뻗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는 그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두렵지 않아요. 왠지 알아요. 당신을 잃은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을 테니까요. 나는 쓰러진 나무처럼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면 돼요. 풍파가 지나가길…



2023년 2월 24일

사랑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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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아, 참 며칠 전에 당신이 나에게 준 꽃다발 너무 고마웠어요. 다시 꿈에 나타나 선물 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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