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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May 23. 2023

오늘, 살아있다는 것이 참 좋아요!

사랑하는 당신에게

Y. Y. Massart, <안녕 여보!>, 2022년 12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 늦잠을 잤어요. 눈을 뜨고 이불속에서 어기적 어기적. 추운 겨울이라 그런가요. 나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까지 참 오래 걸리네요. 따뜻한 우리 집에서 오늘의 하루를 시작하는 나. 여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답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참 좋은 거예요! “


이곳은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추운 겨울, 그리고 더운 여름을 체감하며 살아요. 계절이란 시간이 주는 선물이죠.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요? 그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인가요?


오늘은 흐리네요. 이 흐린 날씨도 운치가 있다며 당신은 참 좋아했는데. 어제는 햇빛이 쨍쨍, 며칠 전에는 비가 주룩주룩. 어디 그뿐인가요. 눈이 온 날도 있었어요. 이처럼 자연은 나를 위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이랍니다.


오늘 아침은 얼마 전에 얼려놓은 초콜릿 빵을 냉동고에서 꺼내 따뜻하게 데웠어요.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넘기고 따끈한 초콜릿빵을 ‘아앙~’하고 물면 퍼지는 달콤함과 고소함. 이 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요? 내가 살아있으니 누릴 수 있는 맛이랍니다.


여보, 나 당신에게 칭찬받을 일이 있어요. 어제부터 불어공부를 시작했거든요.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스터디를 하기로 했어요. 그 친구 또한 나처럼 집순이인지라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일주일 동안 공부한 것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어요. 전화로…


우선 내가 공부하자고 한 책은 <꼬마 니콜라, Petit Nicolas> 예요. 당신 기억나죠. 내가 불어공부 한다고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달라고 했던 그 책. 한번 읽기만 하고 불어공부는 미뤄두었던 책이었죠.


사실, 친구도 나도 불어책을 읽으면 이해는 거의 다 돼요. 가끔 모르는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이해하며 읽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요.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불어책은 <헨리포터 시리즈> 7권이었어요. 그때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고 헨리 포터만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던 당신의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요.


친구와 내가 불어공부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바로 제대로 말하고 싶어서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정말 부러워요. 나는 한국말도 프랑스말도 잘 못해요. 제대로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늘 사용하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고 특히 내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바로 <그거, 저거, 아!, 그거, 그거…>랍니다. 여보 나는 왜 두리뭉실,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할까요. 핵심을 말하지 못하고 주절주절 말을 길게만 하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단어가 너무나 많은데 왜 사용을 못할까요?


당신이 있을 때는 당신에게 의지하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것도 많고, 당신 뒤에 숨을 수 없으니 노력해야죠. 여보, 내가 이렇게 무엇인가를 계속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으니 가능한 것이니까, 불만이 아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죠. 그렇게 생각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어제는 100유로가 넘는 가격의 장도 봤어요. 당신에게 늘 만들어주던 영양빵도 만들었고요. 예전에 만든 영양빵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젠 오로지 저를 위한 빵이에요. 이와 같이 나를 위한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어요.


내가 당신의 습관을 따라한 것 중에 제일 잘한 것은 바로 잠들기 전에 20분 정도 책을 읽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떠나고 밤에 홀로 느끼는 적막함이 싫어서 이제는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오디오북을 들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안은 덜 외롭거든요. 요즘, 애거서 크리스티 장편소설 <서재의 시체>를 듣고 있어요. 무료로 오디오북을 선택해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에요. 얼마나 맛깔나게 읽어주는지 감사한 분들이 참 많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당신의 2층 서재가 나는 참 좋아졌어요. 왜냐고요? 바로 큰 창문 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에요.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거든요. 3분의 2는 하늘로 펼쳐진 광경, 노을이 지는 시간에 펼쳐지는 붉은색 파노라마는 매일 나에게 감동을 주고 있답니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집집마다 켜지는 불빛들. 인간의 다채로운 삶을 증명하듯 빨간색, 노란색, 흰색의 작은 불빛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하늘의 별은 가끔 반짝입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빛들이 좀 아쉽네요. 그래도 건물이 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아직 동네 한 바퀴 산책은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신이 매일 운동해야 한다고 잔소리했는데. 당신과 함께 걸었던 곳, 혼자라도 걸으며 우리 동네의 냄새와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차가운 공기 한 모금 마시면 상쾌할 텐데. 집을 나가지 않고 버티는 내가 참 한심하죠. 그래도 조금씩 노력 중이니 걱정 말아요.


어디선가 새가 노래를 부르네요. 새들도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있나 봐요.


오늘 당신의 아내는 외쳐요.

“살아 있다는 것이 참 좋아!”라고.


아! 눈물이 또 올라오려고 하네요. 여보, 잠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그럼 오늘도 안녕.


2022년 1월 22일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추신

여보, 나는 가끔,

“죽어서 참 좋아!”라고 외치는 당신을 상상해 봐요.

사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도,,, 그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죽어서 더 좋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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