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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은 산책

by YYMassart

일요일 오전 11시 반, 루브르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12시 반쯤 도착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버스가 도착했고, 아무 의심 없이 올라탔다.

그런데 불과 두 정거장 만에 내리라는 안내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어떤 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욕설을 내뱉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다음 버스는 20분 뒤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 버스가 정상 운행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기다리느니 걷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빨리 결정하고, 빨리 걸어야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걷는 동안 짜증이 밀려왔다.

루브르에서 작품 설명 가이드를 해야 하기에 오늘도 4시간가량 많은 걸음을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20분을 더 걸어야 한다니, 불평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흩날렸다.

남편과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지나며 오래된 기억이 스쳤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걷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감정이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비로소 이유를 알았다.

거리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멈춘 이유를 이해하자, 조금 전의 짜증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돌아보니, 그 길은 나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어 있었다.

그 기회로 가을의 공기를 마셨고, 낙엽을 밟았으며,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쁘지 않은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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