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짓누르는 기억들

by YYMassart
괴로운 밤.png Y. Y. Massart, <괴로운 밤>, 2021년 2월




남편에게 왜 그랬을까? 매일 나를 짓누르는 기억들.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 그 기억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린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밤을 보낸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년)>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회사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기억을 삭제하고 싶은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숨쉬기가 좀 수월해질 수 있을까?


과거 나는 머릿속에 뭉글뭉글 떠다니는 그늘진 기억을 싹 지워버리고 싶으면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 1878-1935)의 <목욕하는 여인들>을 보곤 했다. 흰색 실루엣의 세 여인들이 세잔풍의 자연 속에 서 있는 그림이다. 흰색 실루엣은 여인들의 감정 표현을 백지화시켜 버렸다. 그래서일까 그 그림을 보는 나의 마음이 평온해 지곤 했다. 이 여인들처럼 나의 모든 자책을 흰색으로 말끔히 지우고 싶다. 하지만 이 부질없는 생각 또한 또 다른 번뇌일 뿐이다. 이렇게 자책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나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중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둘의 추억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렇다면 그들의 바람대로 운명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끌리고 다시 설레고 다시 사랑한다. 그리고 다시 추억이 쌓인다. 그들의 삶에 행복한 색깔이 다시 입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틴어의 어원에서 앨범(album)은 ‘흰색’이다. 흰색 종이에 다양한 색들이 칠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앨범에 추억의 사진을 채워나간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한다.


기억을 지운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 여주인공. 다시 과거의 그림자가 그녀를 괴롭힌다. 두려운 그녀는 도망치려 한다. 이별을 원한다. 완벽하지 않은 그녀, 그렇기에 실수를 반복할 그녀. 그래서 미래가 두려운 그녀. 하지만 남주인공은 깨달아 버렸다. 그녀가 없는 삶은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괴로운 기억이 있기에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상대방을 배려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짜 놓은 틀에만 상대방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갈등의 간극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둘은 서로 치유해 주며 이젠 ‘괜찮다’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정말 잘할 수 있는데!”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남편과 재회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기억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모든 기억이 소중하다.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기억들이지만 그 또한 앨범에 쌓여있는 우리의 사진들처럼 소중하다. 그 기억들도 우리의 삶이었고 우리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 밤 나를 괴롭히는 이 기억들이 우리의 시간으로 그리고 추억의 한 장면으로 되는 날, 나는 나를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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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비치, 「목욕하는 여인들」, 1908년 /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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