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by YYMassart
Y. Y. Massart, <홀로>, 2021년 6월



15년 전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 나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치료를 받자고 말했을 때 비로소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그때 나는 전화를 멀리했고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대인기피로 ‘쉼’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 웃었고 잘 먹었고 잘 잤다. 게다가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고 책도 쓰고 있었다. 낮에는 집에서 과외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나는 집 밖을 나가는 것은 거부하고 있었다.


남편은 기다렸다. 아버지를 잃고 겪는 우울증이니 시간이 약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집 밖을 나가면 몸이 반응을 했다. 구토와 숨쉬기 힘들었고 버스를 타는 것도 지하철을 타는 것도 공포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받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우리의 방식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 후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우리는 매일 1시간 정도 동네를 걸었다. 주말에는 버스 타는 연습을 했고 지하철 타는 연습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노력은 1년을 넘게 이어졌다. 차츰 나는 어둠에서 벗어났고 혼자 파리 시내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1906년에 제작된 뭉크의 그림 <거리에 내리는 눈>을 보면 남편과 함께 걸었던 그날들이 떠오른다. 그림을 보자(아래). 흰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이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와 빨간 모자를 쓴 여자가 보인다. 커플이 걸어 나온 가로수 길엔 어둠의 그림자가 요동치고 있다. 평온한 눈길과는 달리 암흑의 공포는 금방이라도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무섭게 가로수를 뒤흔들고 있다. 커플은 어둠은 뒤로하고 앞을 향해 계속 걸어 나간다. 미래를 향해. 둘이 함께.


멜랑콜리(melankholía)는 그리스어 어원에서 melas는 검정을 뜻하며 kholé는 노랑/담즙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옛날에는 흑담즙이 과잉되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리고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의 피는 검다’라고 표현했었다. 빨간색의 피가 흑색이 될 정도로 심신이 침울하고 암담하다는 뜻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다시 이 멜랑콜리에 빠졌다. 내 피는 다시 검게 변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잃었을 때와 다르게 잠도 못 잤고 먹지도 못 했다. 그리고 다시 집 밖을 못 나간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제는 약에 의존해야 한다.


'적당한 애도는 돌아가신 이에 대한 의무이지만, 지나친 슬픔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 적이 된다.'(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란 것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너무나 힘든 말이기도 하다.


이제 나와 함께 걸어 줄 사람은 떠났다. 나는 홀로 걸어야 한다. 멀고 먼 길이지만 홀로 걸어 나가야 하는 나의 삶이 남았다.






여보 그때 같이 걸어줘서 고마웠어!

사랑하는 아내가.


뭉크, <거리에 내리는 눈>,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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