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효과(lemming effect)
레밍은 북유럽의 작은 설치류인 레밍이 벼랑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사실 레밍의 근시와 떼거리 본능에 의한 것으로 생존을 위한 본능적 이동 중 발생하는 비극적 사고이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레밍은 매우 근시가 심해서 멀리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한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벼랑 끝에 도달했을 때 바다를 작은 강이나 호수로 오인하고 앞서 가는 레밍이 뛰어 내리면 뛰따라가는 레밍드로 덩달아 뛰어내려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또 다른 견해는 떼거리 본능과 과속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레밍은 직진으로만 움직이며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한 마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면 다른 레밍들도 무조건 따라가게 된다. 결론은 무분별하게 남을 따라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며 이를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고 하며 군중심리하고도 한다.
생활 속에서 레밍 효과를 활용한 실례로는 예능 방송에서 인조 웃음을 넣는 것이다. 인조웃음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도 따라 웃으며 방송을 더 재밌다고 평가한다.
방문 판매하는 판매원이 옆집 00씨도 샀어요 라는 멘트는 판매량을 늘려준다. 바텐더 팁을 넣는 유리병에 돈을 미리 넣어 두는 것도 레밍 효과를 유도한 것이다.
사람들은 확실한 답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동조하고 군중심리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h)는 선분동조 실험을 고안했다.
그는 한 명의 실험 참여자와 6명의 실험 도우미를 한 팀으로 묶고 실험을 실시한다. 실험 참여자에게 두 개의 카드를 제시하며 왼쪽 카드에 그려진 것과 동일한 길이의 선분을 오른쪽 카드에 그려진 세 개의 선분들 가운데서 고르게 하였다.
실험과 개인과 그룹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단 1명의 실험 참여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6명은 배우(실험도우미)였으며 그들에게 먼저 오답을 말하게 하고 살험참여자는 가장 나중에 답하도록 하였다.
실험도우미들은 딱 봐도 제일 비슷한길이의 선분을 고르지 않고 말도 안되게 차이나는 선분을 모두 고른다. 그 결과 혼자일 때는 정답률이 99%였지만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실험에서는 정답률이 23%에 그쳤다.
이 실험은 아무리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가 동조한 의견에 넘어갈 수 없는 인간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다수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본능이 있다. 원시시대부터 집단에서 소외되면 곧 죽음이었기 때문에 인간은 집단에 동조하고 서로 협력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동물에게는 해롭지 않는 먹이를 구별하거나 천적이나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등 생존에 도움이 되었고, 인간에게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이용하는 등 군중심리가 제공하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군중심리가 항상 좋은 양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이나 여론몰이 그리고 마녀사냥 등 그 부작용과 폐해도 만만치 않다. 이는 군중심리가 개인의 이성보다 감정에 따른 행동을 하게 만들며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군중심리에 빠졌다는 것을 좀처럼 인지하지 못하는데 군중심리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통념 때문이다. 솔모몬 애시의 선분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도 실험 후 인터뷰에서 왜 오답을 선택했는지 묻자 그들은 다른사람에게 동조했다는 인식보다는 자신이 착각을 했거나 시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그런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부정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떼지어 다니지말고 주체적으로 살라고 장려한다. 우리는 군중심리 작용을 스스로 부정하며 더욱 집단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인생에서 레밍효과는 우리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다.
요즘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는 대전이라고 한다. 여기 말하는 대전은 충청도에 소재한 지역이 아니라 대치동 전세를 줄어서 사용한 말이다. 대치동에 집값이 워낙 비싸서 구매할 수는 없고 전세만 살아도 감지덕지라는 이야기다.
왜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대치동이 살고 싶은 곳 1위가 되었을까? 소위 말하는 일타 강사가 있는 학원이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말은 수강생의 반은 영혼없이 몸만 앉아 있는 수강생이라고 한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끌려와서 자리 채워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ㅇㅇ강사가 족집게 강사하고 유명하니 우리 아이도 ㅇㅇ강사가 있는 학원에 보내고. 작년에 집계가 ㅇㅇ 학원이 일류대를 많이 보냈다고 하니 우리 아이도 보내고, 옆집 아이가 ㅇㅇ 학습지를 하고 성적이 올랐다고 하니 우리 아이도 ㅇㅇ 학습지를 시키고, 부모 레밍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레밍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먼저 우리 아이 공부시키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내가 왜 내 아이를 공부를 시키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지?
그 물음이 바로 철학이다. 고민이 바로 교육관이 된다. 우리 부모은 교육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쁜 삶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고개 들어 먼 앞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남들 따라가기 바빠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가 어느 날 문득 "엄마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거죠?" 라고 묻는다면 부모인 나는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레밍에서 한 단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는 마음속에서 올라왔다면 다시 한 번 더 묻자.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를, 그 대답에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라고 나왔다면 다시한 번 더 물어보자.
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산파법으로 묻다 보면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하게 된다. 결국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만의 교육관이고 레밍부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 우리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공부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될 것이며 공부의 주체도 부모가 아닌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만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무얼해야 잘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부모 레밍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한 가지를 더 추천하자면, 20대가 된 자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좋다. 부모로서 내가 바라고 있는 성인이 된 자녀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한 문장으로 써보면 좋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 사회에 충분히 기능하는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우리 아이가 이것만은 지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부모마다 삶의 가치관이 다르므로 문장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주체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혹은 '남과 어울려 잘 지내고 자신의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 이렇게 교육관이 확고해 지면 굳이 레밍이 되어 우르르 몰려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공부를 못해도 속상하지 않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선택이나 사회적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자녀 양육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의 주체가 부모가 아닌 자녀야 되어야 한다.
또한, 만약에 성인이 된 나의 자녀에게 바라는 한 줄의 문장이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과연 부모인 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의 일에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점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가정 교육은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부모의 뒷모습이 곧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