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
교육정책과 주관 <교육회복 힐링 프로그램>으로 플라워 가드닝 수업을 신청했었는데 다행히 신청이 수락되어 문자로 안내받은 플로어 숍으로 향했다. 도착 후 명단에 있는 내 이름에 서명을 하고 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한아름 놓인 꽃들을 보니 평범한 금요일 오후가 아름드리 고운 향기로 번진다. 곧이어 15년 차 플로리스트 강사의 설명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 놓인 라탄 바구니에 꽃꽂이를 하는 게 이 수업의 미션이다. 근데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보조강사가 옆에서 자꾸 여기에 꽃을 꽂아라 저기에 꽂는 게 더 낫겠다 등등 간섭을 하는 게 내심 불편했다. 딴에는 꽃꽂이에도 요령이 있어 잘 알려주려는 의도였겠지만, 모처럼 모든 뇌활동을 자제하고 잠시나마 내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꽃꽂이에도 마치 정답과 룰이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이 부담스레 느껴졌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와 같은 작은 배려와 센스를 발휘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작 한 시간 반 남짓의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기대가 너무 과한 걸까..
갖가지 꽃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꽃송이들을 어느 위치에 꽂으면 좋은지 설명하는 강사의 수업을 허겁지겁 따라가느라 정작 꽃을 음미하며 오감으로 즐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참여했던 다섯 명의 꽃바구니들이 모두 완성되었는데 아뿔싸.. 강사의 설명과 보조강사의 의견에 따라 완성된 꽃바구니들은 하나같이 형태와 느낌이 비슷했다. 사진을 찍는다고 꽃바구니들을 몇 개씩 줄지어 늘어놨는데 무슨 기성품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중 유독 튀는 꽃바구니가 하나 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 작품(?)이다. 플로랄폼에 키를 맞추어 빼곡히 꽂아놓은 내 꽃바구니는 조금 답답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으랴? 사실 꽃꽂이는 창작물인데 무슨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꽃송이들이 플로랄폼 위에 조금 여유를 두고 듬성듬성 꽂혀 있는 다른 꽃바구니들은 젊은 소녀가 나풀나풀 풀밭을 걸어가는 모습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라면, 내 꽃바구니는 한복이나 정장을 차려입은 원숙한 여성의 자태에 더 어울릴 법한 분위기랄까?
'우로 우향우 좌로 좌향좌 일렬종대 헤쳐모여 짝짝짝'
'다름'이 '틀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토록 정답을 좋아하고 뭘 해도 하나같이 똑같은 걸 추구하며 그걸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는 폭력과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걸까? 플라워 가드닝 수업으로 출발한 이야기가 폭력과 만행으로까지 와버렸으니 비약이 좀 과한 걸 수도 있겠지만 나의 생각과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때때로 분명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획일성과 몰개성에 익숙하고 남과 다른 것, 전체적인 대열에서 이탈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민족도 참 드문 것 같다. 학창 시절 국민의례 시간이나 고등학교 교련 수업 때 받곤 했던 군대식 훈련처럼 엄격하고도 천편일률적인 그 대열에서 조금만 이탈해도 소위 유별난 사람, 튀는 사람 혹은 전체와 융화가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히곤 했으니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관종'이라는 말이 그토록이나 보편적으로 나뒹구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너무 오랜 세월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경쟁지향적이면서도 획일적 교육에 젖어있다 보니 '정답'을 추종하고 타인에게 '똑같음'을 강요하는 방식 속에서만 오직 권위와 자존감을 누릴 수 있음이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것 같다. 그 권위와 자존감은 잠시나마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묘한 만족감과 착각을 심어주니까..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나와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더 자유롭게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질까? 비단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에서도, 관계에서도, 모임에서도 우리는 타인이란 도화지에 내가 바라고 좋아하는 색깔을 칠하고 싶어 이미 안달이 났다. 내가 원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그 색을 칠하는 것만이 정답이라면서 말이다.
근 300년간 서양음악의 구조적 기본틀을 형성했던 조성체계는 1908년 아놀드 쇤베르트(A. Schönberg)의 <현악4중주 제2번>을 기점으로 그 기능과 의미를 잃는다. 20세기 초 전통적 장단조 조성체계가 무너지고 무조음악이 나타남으로써 20세기 현대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흔히 합창 음악은 전통적인 조성체계를 갖는 화성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 대부분으로 우리가 합창을 들을 때 감동하는 것은 화음의 조화와 울림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하지만 제2비엔나악파였던 쇤베르트는 1920년대에 12음기법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서 조성을 해제하고 이러한 기능화성학에서 벗어난 다양한 불협화음 역시 자유롭게 다룬다. 무조음악은 쇤베르크와 그의 제가 베르크, 베베른에 의해 발전했으며, 이후 20세기 음악에 포괄적 영향을 미쳤다(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힌데미트, 아이슬러, 크셰넥 등).
쇤베르크의 위 작품 <달에 홀린 피에로>(op.21, 1912)는 지로(A. Giraud, 1860~1929)의 시를 하르트레벤(O. E. Hartleben)이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토대로 작곡한 성악곡으로 대표적 무조음악으로 꼽힌다. 조성의 중심이 없이 불협화음이 계속 나오는 무조적 짜임새와 이 작품의 독특한 성악 기법인 말하는 선율(슈프레히슈티메, Sprechstimme)는 상당히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표출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조음악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억압된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호소하는 주관성을 강조하는 표현주의 미학적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조성을 파괴하고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무조음악이라는 혁신적인 작곡을 시도한 쇤베르크에게 조성음악만이 음악이며 음악은 오직 화음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요했다면 20세기 음악사는 그만큼의 변화와 진보적인 역사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내면의 강렬함을 추구하는 표현주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전통적 미의 기준이나 척도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이는 예술의 고착된 형태나 인습을 타파하는 것으로 수용되었다(홍정수·오희숙, 2002).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나 전통과 마찰하기 쉽기 때문이다. 교육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다는 구태의연한 오명은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은연 중에 그것을 거부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르다는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플라워 가드닝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결과물을 보노라니 조금 헛웃음이 났다. 각기 다른 네 사람이 만든 꽃꽂이가 어쩜 저렇게나 비슷할 수 있을까? 그냥 꽃만 나눠주고 그 시간만큼은 각자의 개성과 느낌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놔두었다면 더 놀라운 작품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텐데.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우리가 가진 습성 안에서 똑같은 건 비단 젓가락 두 짝이 아닌 것 같다.
◦ 음악사 관련 이론 발췌: 홍정수 外, 「두길 서양음악사2」, 나남출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