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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Mar 14. 2022

건반 위의 완벽주의자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1956~   , 폴란드)

삼일절 빼고 수요일부터 3일간 개학 첫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 설레는 기분을 느끼며 대전으로 향했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 폴란드 출신의 거장 크리스티안 짐머만 Krystian Zimerman이 까다로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1주간 자가격리까지 감수하며 대구, 서울, 부산, 대전에서 6차례 공연을 진행 중이다.


연주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터미션을 포함 공연 중 촬영 및 녹음이 엄격히 제한되며 해당 행위가 목격될 시 공연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인터미션은 물론이고 커튼콜 때조차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다. 위와 같은 공연장 측의 사전 안내 문자 때문이었다. 문자 발송으로도 불안했는지 공연장 측은 연주회 당일 아트홀 출입구 벽면에 위 내용을 인쇄해서 붙여놓고 관객들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소문 그대로 짐머만은 무대 위에서 매우 예민하고 작은 소음에도 영향을 받는 연주자였다. 혹자는 소중한 시간과 티켓값을 지불하며 찾아준 관객들 앞에서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게 아니냐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무대에 있는 연주자를 향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정중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1975년 쇼팽 콩쿠르에서 열여덟의 나이로 우승한 그는 평생 기인에 가까운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는 연주 때마다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통째로 가지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카네기홀 공연 때는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피아노 조립 시 사용했던 접착제에서 화학 약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애지중지하던 피아노가 폐기되는 사건을 겪었다. 그 뒤부터는 건반과 액션(건반에 가해지는 에너지가 해머에 전달되고, 현을 진동시키는 부품 구조)만 가지고 다니는데 이번 내한에도 자신의 소중한 일부를 모셔오신 그가 '건반 위의 완벽주의자'라고 불리는 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완벽한 연주가 아니면 녹음으로 남길 수 없다며 이미 발매된 자신의 앨범을 다시 전부 사들여 폐반시킨 것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짐머만이 모든 리사이틀을 위해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실어 나르며 고달픔을 자처하는 이유는 청중들에게 악기의 복합성과 역량을 좀 더 잘 전달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피아노 제작 및 음향에 대한 전문 지식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악기로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도 더 완벽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Pianist Krystian Zimerman (Felix Broede and Deutsche Grammophon)


음반으로만 듣던 그의 연주를 직접 실연으로 마주하니 그의 모습은 흡사 '건반 위의 완벽주의자'를 넘어 '건반 위의 수도자'와 같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마저 풍겼다. 이미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실루엣에선 품격이 흘러넘쳤고, 피아노 앞에서의 꼿꼿한 자세, 터치 한 번에도 마치 건반 위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듯 고요하면서도 짙은 여운을 따라가느라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연주를 감상하는 내내 나는 불현듯 그의 연습실과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피아노 외에 불필요한 요소들은 다 걸러내고 몹시 정갈하면서도 규칙적인, 수도자와 같은 삶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인 그는 실제로 가족과 함께 삶의 대부분을 보낸 스위스에 거주하며 자신의 시간을 가족, 연주 활동, 실내악으로 구분해 놓고 한 시즌 단 50회의 콘서트 무대에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연주자로서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와 꾸준한 공부가 아니라면 결코 흘러나올 수 없는 그만의 음색과 독특한 아우라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공연장 측의 사전 안내에도 불구하고 1층 객석 어딘가에서 연주 도중 휴대폰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일까? 몇 번의 커튼콜에 화답한 후 앙콜곡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대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상적이고 들뜬 에너지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정제되고 아름다운 소리만이 그의 손끝을 맴돌아 피어오르듯 그렇게 경건하면서도 품격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다보면 내 삶도 하루하루 음악처럼 조금씩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기대 이상 너무 좋았던 짐머만의 브람스, 유튜브에서 그가 연주한 영상은 찾아볼 수 없으니 대신 엘렌 그리모 Hélène Grimaud(1969~ , 프랑스)의 연주로.. 미모만큼이나 그녀의 연주도 참 매력적이다.

https://youtu.be/oyFYDwxUmIA

Hélène Grimaud Plays Brahms Three Intermezzo O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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