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bra mai fu _G. F. Handel
끝없는 업무와 의미를 잃어가는 꿈 학기말이 되면 일은 끝이 없다. 원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쉽게 지치는 법이 없지만 내 고충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꿈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나 장학사의 소식을 접하면서 교단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가르치는 일이 좋고, 종종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조직과 제도에 대한 실망감이 점점 쌓여간다. 사실 14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그 흔한 슬럼프 한 번 겪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이 주기적으로 겪는 몸살 같은 걸까? 아니면 좀 더 심각한 변화의 신호일까? 문득 내 마음속에 고여있는 이 의문들이 한낱 지나가는 바람이길 바라본다.
교단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전문직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며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이면서 얻는 노련함과 경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보물이겠지만, 매년 더 젊어지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느끼게 될 이질감과 소외감은 피할 수 없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러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조직 생활 자체에서 오는 지긋지긋함이다. 운 좋게 전문직 시험에 합격해 교육청이나 상급 기관인 교육부로 간다 한들, 그곳은 다를까? 무엇보다도 조직이라는 거대하고도 모순 투성이인 집단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문서에 박힌 깨알 같은 글자와 규정에 얽매여 통제와 감시, 견제가 일상화된 조직에 점점 신물이 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꼭 당사자들의 문제일까? 마녀사냥을 일삼고 민원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점점 악해지는 세상이 결국 너와 나,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고요한 마음의 산책
우엉차와 고요한 위로 퇴근 후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말린 우엉을 넣고 차를 끓인다. 우엉차는 달콤하지도 향이 좋지도 않지만, 그 절제된 풍미가 마음에 든다. 우엉을 차로 끓여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고,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몸이 가벼워지는데, 다음날 아침 체중을 재어보면 확실히 숫자가 줄어있다. 몸에 좋은 것은 대부분 맛이 없다. 피자, 치킨, 라면을 멀리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먹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체중이 늘고 기분도 좋지 않다. 장마로 며칠째 비가 내리며 불쾌지수가 올라가지만, 따뜻한 우엉차 한 잔에 기분이 금세 나아지는 걸 느낀다.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시름 산책을 위해 얼마 전 입고 말려 두었던 우비를 꺼내어 손에 든다. 비에 젖지 않기 위해 우비의 모자까지 단단히 눌러쓰고, 야무지게 끈을 동여맨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신용카드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은 집에 둔 채로 문을 나선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최고의 방법은 집 밖으로 나가 걷는 것이다. 걷기의 유익에 대해선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오니 가볍게 산책을 나설만한 비가 아니었다. 성난 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인도는 물웅덩이로 가득 차 있고, 운동화는 빗물에 흠뻑 젖어 스펀지처럼 첨벙거리며 소리를 낸다. 폭포수 같은 빗줄기에 시야가 막혀 얼굴을 셀 수 없이 빗물에 씻어 내려야 했다. 이런 날씨에 감청색 우비를 휘감고 길을 걷는 여자를 누가 봐도 평범하게 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너무나 경쾌하게 들린다. 집안에서 들을 때도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빗소리는 합성 PVC 재질의 우비 위로 쏟아지며 선명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 소리는 마치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고 청량하게 들린다. 빗줄기에 내 마음의 시름들이 모조리 씻겨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한 시간 만에 물귀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주는 안온함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물에 젖은 우비와 옷을 벗어놓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물의 온기가 전하는 위로가 있다.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보송보송하게 머리를 말린 후 우엉차 한 잔을 끓여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멀티태스킹을 잘하지 못해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을 하는 게 조금 버겁다. 글을 쓸 때는 주로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지만, 좋아하는 클래식 라디오의 DJ 목소리가 듣고 싶어 블루투스 오디오를 켠다. 선곡표를 확인하니 헨델(G. F. Handel, 1685~1759)의 <Ombra mai fu>가 곧 흘러나올 예정이다. 이 음악이 내 마음을 또 한 번 위로해주리라 믿으며 조금 유별났지만, 온몸으로 저항하며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은 스스로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