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 Maria _F. Schubert
올해 유독 일찍 찾아온 무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일로 요 며칠 계속 잠을 설친다. 모든 게 불안정하고 걱정 투성이었던 이삼십 대에 비해 사회에서 어느 정도 내 자리도 찾고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으면 불필요한 일들에 신경을 쓰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만큼 잘 해내진 못할지라도 주어진 내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순풍에 돛 단 듯 인생이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인생지사 해야 할 일들은 끝도 없고 문제 하나가 해결이 되어 '이제 좀 살겠다' 싶으면 다른 곳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터져버린다.
7년 전 아버지께서 임대용으로 조그만 상가를 하나 마련하시는데 돈이 좀 부족하다고 하셔서 내 명의로 꽤 큰돈을 대출해 드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지내시는데 용돈이라도 넉넉히 쓰시면 자식 된 입장에서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실로 지난 수년 동안 매달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료는 14년 차 교사인 내 월급보다 많았고 노년의 아버지가 혼자서 용돈으로 쓰시기엔 충분한 돈이었다.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사기를 당하거나 투자를 잘못하거나 그런 비극은 아니라서 천만다행인지 모르지만, 계약 시 받은 보증금까지 전부 또 다른 부동 자산에 묻어두신 바람에 당장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는 게 함정.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돈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딸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7년 동안 꼬박꼬박 임대료를 지불하며 계약이 종료된 뒤 원상복구까지 해놓고 나간 임차인에게 보증금조차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기가 찰뿐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고금리와 불경기에 내수 부진이 이어지며 새 임차인을 구하는 게 쉬운 상황도 아니라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안분지족(安分知足). 평소 돈 관리에 있어서는 소액이라도 이자 한 번 연체된 적이 없을 만큼 결벽적인 편이라 평생 사업을 해오신 아버지가 노년에 돈을 대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하시지만 나와 동생들 누구도 미래를 위해 소중한 현재를 저당 잡히길 원치 않는다. 자식들 모두 제 삶은 건사할 수 있을 만큼 잘 컸으니 아버지 돈은 아버지 자신을 위해 아까워 말고 쓰시라고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고집스럽고 완고해지는 성향도, 건강까지 문제가 생기면서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화를 내시는 것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무엇보다 부녀간에 달라도 너무 다른 사고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힘든 속사정을 지인에게 토로하니 그가 말하길,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 사이에는 서로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없다고 했다. 전쟁으로 인한 최빈국의 삶을 경험한 세대들은 욜로나 현생과 같은 개인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핍과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자란 세대들은 우리 세대와 달리 뭔가를 감춰두고 쌓아두며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걸 힘이자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듯도 싶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6.25를 경험한 세대이며 실제로 우리 사회 노년층과 청년층 간 세대 갈등은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노인 세대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신동흔 건국대 교수팀, 한국전쟁 체험 238명 증언 분석 → 학술 자료 추가!)
아빠와 딸
월요일 퇴근 후 교육청 연수원에서 '그림에 음악과 향기를 더하다'라는 주제의 인문학 연수를 들으며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가 임차인의 독촉 전화였다. 살면서 단 돈 100원을 가지고도 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너무 속상하고 짜증이 솟구쳤다. 다음날 아침,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은 채 학교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신호 대기 중 차 안에서 화장을 고치다가 백미러를 보는데 바로 뒤차 운전석에 앉은 중년 남성과 옆자리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도 직업병인지 우리 학교 학생인가 싶어 바라보던 찰나 운전석의 남성이 뭔가를 주섬주섬하다가 조수석에 있는 딸에게 무심한 듯 돈 만 원을 건넨다. 그 순간 내내 무표정한 여학생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진다. 피곤한 월요일 아침, 아빠와 딸의 출근길과 등굣길.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인 건가? 조금은 서먹해 보이던 그들의 분위기에 일순간 화색이 돈다.
문득 나 어릴 때 일을 마치고 막 귀가하신 아버지께서 뭔가를 주섬주섬하다가 호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이 기억을 비집고 나왔다. 그때 아빠가 무심한 듯 어린 두 딸들에게 내밀었던 건 당시 유행했던 영화 「이티(E.T.), 1984」의 주인공이었던 이티 인형이었다. 언니 것보다 자기 인형이 더 못생기고 작다고 동생은 뾰로통했었다. 이티는 외계인이라 원래 주름도 많고 못 생겼는데 말이다. 출근길 차 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뒤차량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과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어릴 적 나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이 태어나 맺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천륜天倫은 흔히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라면 부모 자식 간이라도 냉정히 끊어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내게 아무 대가 없는 많은 혜택을 준 이는 나의 부모님이다. 아버지께서 가시는 날까지 건강히 즐겁게 잘 사셨으면 좋겠다. 서운한 것도 원망도 많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이 음악으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수미는 2006년 4월,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국제무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연주회를 앞두고 공연 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장 귀국하려 했지만 어머니께서 그러지 말라고 '파리의 관객들이 네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취소하지 말고 차라리 그 공연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위해 바쳐라' 하셨다고 한다. 그녀는 울음을 억누르며 관객들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했고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Ave Maria'를 연주했다. 극장에 모인 수많은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한참 동안 기립 박수를 보내며 조수미를 위로했다.
아버지를 위해
사랑의 주님,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뒷모습뿐입니다.
저희를 위해 당신 자신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평생을 부지런히 일해 오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허전한 어깨를
저희 사랑으로 채우게 하소서.
아버지의 아픔을 사랑하고 주름살을 헤아리며
한숨마저 아름답게 듣게 하소서.
저희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보람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저희와 더불어 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