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신내림 받은 애동제자
정난은 원래 알던 친구는 아니었다. 영남이 천호동에 점사를 보러 갔다가 또래였던 애동제자, 정난과 친해지게 된 것이다. 정난은 갓 신내림 받은 애동답게 점사를 잘 봤고, 인간적으로도 참 괜찮은 친구였기 때문에 금방 친해졌다. 신당 옆 방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손님이 가면 같이 놀고, 손님이 오면 다시 옆방에서 놀고... 그땐 뭐 그리 재밌는 이야기가 끝도 없었는지 하루가 짧았다. 금세 해가 지곤 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결혼을 해서 서울에 자리 잡고 살던 영남은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컸고, 정난에게 실린 동자와 장난을 치며 놀기도 했다. 동자와 말장난을 하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어리고 순수한 아이인 동자는 장난도 좋아하기 때문에 천성이 밝고 명랑한 영남과 죽이 잘 맞았다. 이를테면 "나 더 놀다 가고 싶으니까 우리 남편 좀 더 늦게 집에 오게 해 줘."라든가...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남편은 늦게 퇴근했다. 영남이 느지막이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곧이어 들어오는 것이 우연인가 싶기도 하고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난이 문득 영남에게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 아버지 어디 편찮으시니?" 아버지인 동철이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지셔서 다리를 절뚝거리신다. 몸져눕고 편찮다 하실 정도는 아니지만 정난이 물어보는 낌새가 사뭇 진지했기 때문에 "응, 얼마 전에 오토바이 타다 다치셔서 다리가 좀 불편하시다."라고 말했다. 심각하게 다치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저러다 나으시려니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뜻밖에 정난이 뒤이어 말했다. "이번에 누우시면 못 일어나실 것 같아. 너희 대전집 현관에 옥색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오라고 손짓하고 계셔. 혹시 나무 건드신 적 있니?"
그제야 불현듯 떠올랐다. 동철이 다치기 얼마 전, 영남의 남동생 영봉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와 부딪쳐 병원에 실려갔고 뇌출혈이 왔던 일. 그리고 뒤이어 동철이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일. 연달아 일어난 일들을 전하며 엄마인 봉순은 말했었다. "니 아부지가 영봉이랑 산소에 갔다가 그늘진다고 나무를 베었다지 뭐니." 엄마는 그 말을 내게 왜 했을까. 그때는 이렇게 연관이 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엄마도 아부지가 나무를 베었던 일이 찜찜했으니 말했던 것 같아.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영남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응, 얼마 전에 산소 갔다가 나무를 베셨다고 했어."
"아무래도 그 산의 나무를 건드린 게 잘못된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해?"
나는 애동이라 못하고 큰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