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문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96년 경 대전에서 벌어진 한 집안에서 생긴 일이다. 이 집안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개국충절공 대장군이 시조로 직계 자손들 또한 개국충절공과 문하시중이었다. 문무를 다 갖춘 걸출한 장군들을 배출한 가문의 후손들이며, 나의 외가이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자면, 그 어려운 시절에도 기골이 크신 편이었고, 늘 호탕하게 웃으시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신 분이셨다. 나는 외할아버지를 자주 뵙지는 못해도 은근히 좋아했지만, 3살 어린 여동생은 가까이 가기 무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 가는 외가는 무관의 집안이라면, 자주 가는 친가는 문관의 집안이라서 뼈대 자체가 달랐다. 친가 어른들은 버들가지나 난초를 떠올리게 했다면, 외가 어른들은 무화과나무를 떠올리게 한달까. 어딘가 단단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중에서도 외할아버지는 가장 호랑이 같은 느낌을 주는 분이었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동철)는 외형부터 듬직하고 든든한 집안의 큰 어른이셨다.
내면도 마찬가지였다. 6.25 참전용사셨고, 전쟁 이후 처절하게 가난했던 집안을 일으키셨다. 유천동 셋방에서 시작해서 5남매를 키우며, 자식들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집을 샀고, 번듯한 사업도 하게 되었다. 한 문장으로 쓰기는 쉽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 시절, 무일푼에서 쌀집 배달부터 시작해서 10여 년 만에 이층 집과 차, TV와 피아노까지 장만할 정도로 번듯한 집안으로 키워낼 만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수완, 그리고 사나이다운 배포가 남다른 분이셨다.
'동토'는 내 외할아버지, 동철의 이야기이며, 그의 딸이자 나의 이모(영남)를 통해 듣게 되었다. 이모는 나의 정신적 지주이며, 존경하는 어른이시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모가 가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측은지심과 도량이 넘치고, 늘 앞장서서 손수 다 챙기신다. 그런 모습에서 외할아버지를 종종 떠올리곤 했다. 이웃에게 정이 많고 남을 도울 줄 알던 외할아버지를 이모가 가장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아셨던 건지 외할아버지도 이모를 가장 아꼈다. 이모 또한 많이 의지하고 따랐다.
외가 친지들이 모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누던 추억, 이제 신화처럼 남아버린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이 글은 실화이지만 어떠한 종교적인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한국 고유의 어떤 부분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이제는 대중들과 조금은 가까워진 산소탈, 조상바람, 신가물에 대한 이야기도 연작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브런치에 매거진을 개설해 두고 미발행으로 돌린 글들도 있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봤기 때문에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길 다짐해 본다. 이 이야기의 거의 모든 소스를 주신 나의 이모이자 주인공인 영남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길.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도움 주심에 이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