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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빛윤 Jun 16. 2024

봉순

신가물 자손




봉순이 영봉의 사고소식에 못내 찜찜해서 출가하여 서울에 사는 딸, 영남에게 전화를 한 것은 영남이 가장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식 중 가장 감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의 기분을 잘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난이 먼저 물었을 때 영남 또한 엄마 봉순의 찜찜함을 느꼈기 때문에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봉순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끝내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녀의 집안 또한 신의 제자, 신가물 집안이었다. 봉순은 종교가 없었고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촉이 좋은 편이었고 기운을 느꼈다. 




한 번은 굿판에서 구경을 하다가 무당이 대뜸 봉순에게 본인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잡으라 했다. 거친 나뭇가지를 맨손으로 잡기 싫어서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봉순의 옷고름이 나뭇가지에 휘리릭 감기더니 맨손으로 잡아도 부드럽게 가지를 감싸게 되었길래 그제야 잡았다고 했다. 그 일은 신기한 마음에 자식들에게 가끔 말했던 봉순이었다. 훗날에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으나 봉순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그런 게 아니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보통 일반인들은 굿을 하는 도중에 무구를 잡아보라고 해도 꺼려한다. 가끔 무령(무당이 굿 할 때 쓰는 방울)을 무당이 쥐어주기도 하는데, 억지로 쥐어받아도 그냥 잡고 있거나 쭈뼛거리다 금방 내려두지, 흔들거나 좋아하는 것은 신가물이라는 표시라고 한다. 신가물은 방울 소리를 들으면 일반적인 방울소리로 들리지 않는다고도 하며, 그래서 어떤 무속인들은 신가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방울을 흔들라 하고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묻기도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종교가 없는 봉순은 아들을 위해 아들의 생일마다 방생을 했다. 가족과 친지들, 이웃에 박하고 덕이 없기로 유명했던 봉순이었지만, 방생의 덕분인지 사후 자손들이 신점을 보러 가면 봉순이 흰 천에 호로록 말려서 극락으로 갔다고 한다. 다들 한결같은 소리를 하는 것도 신기하고, 봉순이 극락에 갔다는 것에도 다들 갸웃거린다. 어쨌거나 조상이 좋은 곳에 갔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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