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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14. 2020

양적완화, 재난소득, 헬리콥터 머니

영국 경제

금융업에 종사했고, 지금도 금융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부 재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홍남기 장관 같은 재정 전문가는 주식이나 선물 옵션 시장의 생리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겁니다. 2000년대 초반에 재경부 고위 관료가 증권사 사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재정과 금융은 작동원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사장만 몰랐지,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재무부 장관인 리쉬 수낙은 모건 스탠리에서 일했고 펀드 매니저로 일했던 금융맨인데, 지금은 재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쉽게 설명하는 재주를 발휘해서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영국정부와 한국정부가 사용하는 재정정책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 정부가 돈을 푸는 방법


수요가 줄고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정부는 돈을 풉니다. 더 많은 돈이 더 빨리 돌아야 경제 침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부가 돈을 푸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QE(양적완화), 재난소득 지급, 헬리콥터 머니 지급 등입니다.


-. QE(양적완화)


양적완화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많이 듣던 말입니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서 돈을 푼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이해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사 주는 겁니다. 그로 인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형태가 채권에서 현금으로 바뀝니다. 현금이 많으면 저금리로 대출해줄 여력이 늘고, 개인 주머니에 돈이 생길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바보입니까? 현금이 생겼다고 갚을 능력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않죠. QE로 개인들 주머니가 갑자기 두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양적완화의 규모가 어머어마해야 개인들 손에 돈이 조금 들어올까 말까 해 집니다. 2008년에 수천조, 경 이런 단위들이 나온 이유가 다 있습니다.


-. 재난소득 지급


우리 정부는 소득이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에 100만원을 지급하려고 합니다. 인구를 53백만으로 잡고 가구당 평균 4인이면, 13백만 가구입니다. 그중 하위 70%라고 하면 9백만 가구입니다. 그러면 9조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우리 정부 예산이 513조니까 정부 예산으로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빨리 지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적은 액수라는 생각도 듭니다.


-. 헬리콥터 머니


헬리콥터 머니가 있습니다. 1969년에 밀턴 프리드만이 처음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으로만 여겼지, 현실에서 발생할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QE와 달리 정부가 직접 돈을 국민에게 나눠줍니다. 우리 정부의 재난소득과 다른 점은 정부가 발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주는 것입니다. 돈 나누어주기의 끝판 왕이고, 소비진작의 마지막 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9년에 호주가 실제로 이 정책을 폈습니다. 연봉 1억원 이하의 노동자 9백만명에게 백만원씩 나눠줬습니다. 백만원을 받은 가구의 35%가 부채 상환에 사용했고, 25%가 저축을 했으며, 40%가 물건을 샀다고 합니다.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호주는 다른 주요 국가와 달리 2009년에 경기 침체를 겪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일본이 헬리콥터 머니를 추진했다가 한발 물러서서 QE를 진행했고,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이 2019년에 검토만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영국의 약한 고리를 들어냅니다. 노동 유연성이 높아서 해고가 쉽고, 계약직 근로자가 많은 곳이 영국입니다. 많은 이들이 실직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리쉬 수낙이 이렇게 들고 나왔습니다. ‘그들을 해고하지 말라, 정부가 월 380만원까지 급여를 대신 줄게. 한번 주는 것도 아니고 3달간 주고 필요하면 더 줄게.’ ‘그럼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도 줘야 해? 그럼 연간 순이익 7천5백만원 이하의 자영업자도 똑같이 줄게.’ 영국에서 코로나가 본격 확산되기 전인 3월 중순에 재빠르게 발표한 겁니다. 여러 나라의 정책 중에 가장 신속하고 광범위하며 구체적으로 등장한 지원책입니다. 헬리콥터 머니를 쓰겠다는 겁니다.


-. 정책의 단점


헬리콥터 머니는 돈이 뿌려지는 순간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양적완화는 완화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헬리콥터 머니는 불가역적입니다. 정책 수단으로써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재난 소득은 규모가 적은 것이 흠입니다. 프리드만이 1969년에 헬리콥터 머니를 예로 들면서 언급한 금액이 일인당 천불입니다. 1969년에 일인당 천불이었는데, 2020년에 가구당 백만 원이라고 하면, 적어도 너무 적습니다. 모럴 해저드를 감수하면서 정책을 편다면 효과가 확실히 나도록 해야 합니다. 모럴해저드는 해저드대로 가져오고 효과는 효과대로 나지 않는다면,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을까요?


-. 행운도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가 현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두가지 쟁점을 덮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의 나쁜 버전이 재난소득이고, 더 나쁜 버전이 헬리콥터 머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을 비난하던 야당도 재난소득의 지급을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선거에서 야당이 이기기 어려운 국면이 돼버린 겁니다. 이건 현 정부의 행운입니다.


영국이 최후의 정책 수단을 주저 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하기 위해 헬리콥터 머니를 검토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 모두 불행 중 다행입니다. God Bless Two Countries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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