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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29. 2020

유물이 탈식민지화, 생각의 탈맥락화

유물의 탈식민지화, 생각의 탈맥락화



94세의 BBC 방송인이며 자연과학자인 데이브드 애튼버로 경(Sir David Attenborough)이 여왕의 증손자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일곱 살의 조지(George) 왕자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2천3백만년 전의 상어 이빨 화석인데 1960년대 몰타의 해변에서 자신이 직접 발견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몰타 정부는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1960년대 몰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몰타의 바다에서 발견한 돌조각은 몰타의 것일까? 조지 왕자의 것일까?



역사박물관에 있는 유물뿐 아니라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물건도 반환의 대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유물과 자연물을 돌려준다면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누구에게 돌려주는가? 어느 물건은 돈을 지불하고 사 왔고, 어느 물건은 주워 왔고, 어느 물건은 빼앗아 왔으며, 어느 물건은 주운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으로부터 빼앗아 왔고, 어느 물건은 빼앗은 자로부터 사 왔다. 이것은 어느 기준으로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 유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맥락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To decolonise is to decontextualise’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에서 적용되는 것인가? 의미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말은 ‘탈식민지화를 하려면 맥락이고 뭐고 따지지 말고 다 돌려주라는 이야기인가?’



영국박물관에는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 있다. 인류 최고의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447년에 만들어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상단부 조각상을 떼어 온 것이다. 유네스코(UNESCO)의 엠블렘이 파르테논 신전이고, 영국박물관 자체가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따서 만든 것을 보면, 파르테논 신전이 인류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1801년에서 1812년 사이에 엘긴 백작(Earl of Elgin)이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사 왔다고 주장하는 유물이다.


최근에 다녀 온 엘긴은 스코틀랜드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엘긴에 박물관을 만들어서 엘긴 마블을 그곳으로 보낼 수도 있을까? 레닌이 혁명 후에 무슬림이 많이 사는 우파(Ufa) 지역의 반혁명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쿠란을 우파에 준 적이 있다.

영국박물관에는 로제타 석(Rosetta Stone)도 있다. 이집트 로제타 지역에서 돌을 발견한 공적은 나폴레옹 군대가 세웠고(1799년), 이집트 상형문자와 이집트 고대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한 것은 프랑스 고고학자였다. 영국 군이 프랑스 군을 포위하고 물건을 빼앗을 수 있었을 때, 프랑스 고고학자가 죽어도 내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로제타 석이다. 영국 군은 자연사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수집품을 프랑스 고고학자에게 돌려주는 인심(?)을 쓰면서 로제타 석만은 재빨리 영국으로 가져왔다.(1801년)



엘긴 마블과 로제타 석은 비슷한 시기에 영국박물관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길거리에 나뒹굴면서 비바람을 맞았을 인류의 소중한 유물이 안전한 거처를 마련한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훔치는 사람 손에 들어가 고향을 등진 것인가? 그리스와 이집트 사람이 영국박물관에서 엘긴 마블과 로제타 석을 본다면 피가 끓을 것이다. 그리스와 이집트는 유물을 가져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물을 반환 요청에 대해 영국인의 반응은 차갑다. ‘로마시대 유적의 상당 부분이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있었다면 파괴되거나 사라지거나 부잣집 정원석으로 쓰이고 있었을 것을 잘 보관하고 해석해 놓았더니 이제 와서 달라고?’ ‘세계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런던, 뉴욕, 파리에 세계적인 유물을 한 군데 전시해 놓고 공짜로 보여 주는데 뭐가 불만인가?(파리 박물관은 공짜는 아닌데!)’ ‘고대 이집트인과 현대 이집트 국가는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소유권을 주장하는가?’ ‘고대 아테네인과 지금의 그리스인은 같은 민족인가?’ ‘물건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인데,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데려가지 그래?(이민자를 빗대어하는 말)’ 등등. 억지스러운 주장과 앙칼진 감정이 교차한다.



엘긴 마블도 그렇고 로제타 석도 그렇고 언젠가는 반환될 것이다. 식민주의 시절, 독립이라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은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곳에서 이뤄졌다. 유행을 타면 생각지도 않게 쉽게 풀리는 것이 인간사다. 어느 나라는 준비되지 않은 채 독립을 맞이했다. 그렇게 유물의 반환도 이뤄질 것이다. 물론 맥락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2009년부터 반환 요청을 받은 7개의 유물 중에 6개를 돌려주었다. 지난해에 에든버러 대학교는 스리랑카와 뉴질랜드에, 맨체스터 대학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유물을 반환했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물 위주로 반환되고 있다. 프랑스는 마카롱 대통령 주도로 아프리카 유물 수천 점을 반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검토만 하다가 말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상어 이빨 화석을 선물 받은 조지 왕자는 어느 시점에 몰타를 방문하여 상어 이빨 화석을 돌려줄 것이다.



독립이 모든 나라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 것처럼 반환도 모든 유물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지를 해야 하는 것은 탈식민지를 해야 하고, 탈맥락화하는 것은 탈맥락화를 해야 하며, 탈중앙화하는 것은 또 탈중앙화를 해야 한다.


영국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이 지금의 1/3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영국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루브르에서 아프리카 유물이 대거 사라진다고 해도 루브르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모나리자가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것을 탈맥락화해도 여전히 많은 볼거리가 런던, 뉴욕, 파리의 박물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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