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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21. 2020

운전자의 나이와 진중권식 해법

런던 라이프

운전자의 나이와 진중권식 해법



진중권이 진보의 스피커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의 보수적인 투표성향에 대한 칼럼에서 ‘그렇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생물학적 해법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칼럼을 마무리한 적이 있다. 15년 전쯤의 글이라 칼럼의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시 나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였지만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은 노인에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노인만 돌아 가시는 것이 아니고, 진보당에 투표를 하는 젊은이도 나이가 들며, 그중 적지 않은 수가 보수화된다. 실제로 나도 보수화 되었고, 그는 더욱 보수화 되어 스피커 방향을 돌렸다. 다음 대선에서 그는 자신이 그리도 원했던 생물학적 해결로 인해 생긴 공백을 스스로 메꾸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도 요즘 세대는 천박하게 생물학적 해법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33년생인 아버지는 74세에 처음으로 자신의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낡은 EF소나타를 드리고 왔다. 부여군청에서 자동차를 변경 등록하고 차 키를 드릴 때 흡족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후에 새로운 차를 사셨고, 강경과 부여를 운전하고 다니시길 좋아하신다.


이제 87세의 연세에 어머니와 같이 기름을 짜러 면내에 가시기도 하고, 런던의 아들에게 고추가루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가시기도 한다. 삽자루를 트렁크에 싣고 들 돈에 나가시기도 한다. 아버지는 80세의 나이에 부여군 건치 노인 선발대회에서 2등을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세월이 흘러 논산에 있는 치과에 차를 타고 가신다.

고령의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운전면허 발부 또는 운전 제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논의의 진심을 믿는다. 의심할 여지없이 부모님을 걱정하는 자식의 마음으로 그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나이 드신 부모님이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양가적인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해법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영국이 경우 70세가 되면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의사를 방문해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고, 신체검사를 통과하면 어렵지 않게 면허가 갱신된다. 그리고 매 3년마다 의사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운전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다. 영국에는 70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4백만 명이 넘는다.

영국 여왕의 남편은 99세인데 97세이던 재작년에 레인지 로버를 운전하다가 본인 과실로 사고를 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차가 전복되는 사고였다. 사고 후에 가족의 만류로 면허를 반납했고 이제는 그토록 좋아하는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4세의 엘레자베스 여왕은 운전면허가 필요 없다. 군주이기 때문이다. 군주가 누구에게 무슨 허가를 받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왕의 차는 번호판도 필요 없다. 그러나 번호판이 없는 차를 타고 나가면 금방 눈에 띄기 때문에 번호판이 있는 다른 차를 타고 나간다. 얼마 전에는 레인지 로버를 운전하는 여왕의 모습이 시민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여왕은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선글래스를 쓰면서 나름대로 변장을 했지만, 누가 봐도 딱 여왕으로 생겼기에 카메라를 피하지 못했다.
  


이제 스피커의 방향을 바꾼 진중권은 어떤 형태의 생물학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른들은 어느 곳에 투표할지 현명하게 판단한다. 진중권 못지않게 말이다. 운전 또한 자식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잘한다. 자식이 체크해야 할 것은 부모님의 건강이지 운전 여부는 아니다.

실제로 노인분들이 운전을 조심하게 하기 때문에 스피드 위반, 신호 위반의 사례가 훨씬 적으며, 교통사고 발생률도 더 낮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력이나 반사신경만 확인이 된다면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이를 바탕으로 운전에 어떤 제한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또 다른 진중권식 엉터리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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