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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Oct 30. 2020

정의가 왼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런던 라이프

영국 노동당의 변화와 한국 정의당에 바라는 기대


정의당의 김종철 대표가 새로운 리더가 되어 일을 잘하고 있다. 고춧가루 뿌리는 듯하여 조금은 부적절한 가정을 해보자. 김종철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심상정 전대표가 근본주의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반남성주의 정책을 펼쳤기에 당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심상정의 당원권을 정지하고 당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고 해 보자. 일부 남성은 그 조치에 환호하겠지만, 당은 심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새로운 대표인 키어 스타머 경(Sir Keir Starmer)이 ‘제러미 코빈 전대표가 당내의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다’고 하여 당원권을 정지시키고 당직을 박탈했다. 제러미 코빈은 노동당 내의 좌파로 많은 열성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에 반해 새대표는 당내 온건 우파다. 제러미 코빈을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을 수 있는 이번 조치에 대해 당내 좌파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의 정신(soul)과 정체성을 놓고 거의 내전 상태에 빠졌다.


반면에 유대인 단체는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영국 유대인의 70%는 보수당을 지지하고 있다. 세속 유대인보다는 종교생활을 하는 정통 유대인의 보수당 지지비율이 높다.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대표


한국의 경우 ‘좌파는 반유대주의 성향이 강하고, 우파는 친유대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단순화할 수 있다. 지나친 단순화이긴 하다. 태극기 부대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집회에 나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영국도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의 좌파는 자신들이 반유대주의가 아니고 반이스라엘이라고 말할 것이다. 엎치나 메치나다. 엎치면 공격이 되는데 메치면 수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반유대주의와 반이스라엘을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엎치는 것과 메치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알이다.

유대인은 국가의 경계를 넘는 다국적인 경향을 보인다. 금융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은 글로벌한 자유주의 성향을 띤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나라를 믿지 않기에 애국주의적 성향을 띠지 않는다. 언제 살고 있는 곳에 반유대주의가 강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탈국가성은 유대인의 정치 및 경제적 성향과 일치한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이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일본식 이름을 썼지만, 실제 이름은 시몬 나이만(Shimon Naiman)이나 아브라함 비트코엔(Abraham Bitcohen)일지 모른다.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자유주의 성향은 국가적 규제를 강조하는 좌파의 성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비트코인과 유대인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삽화


한국과 영국의 좌파는 반전 평화주의적인 경향을 띤다. 그러나 정통 유대인은 반전과 평화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유대교 자체가 배타적인 종교이기에 이방인과의 평화는 중요하지 않다. 의미 없는 평화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반유대주의 칼날이 되어 자신들을 겨눈다고 역사를 통해 배웠다. 미봉적인 평화보다는 근본적인 악(?)의 척결을 선호한다. 이런 특징은 세속 유대인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기는 하다. 정통 유대인의 이러한 성향은 좌파의 반전 성향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제러미 코빈 전 노동당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반전 운동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와 활발히 교류했다.


스타머가 코빈을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낙인찍은 것을 새리더십이 구리더십을 정치적으로 단죄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반유대주의 청산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변화다. 영국의 노동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다 공정한 노동당을 지향할 것이다.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우클릭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당은 우측으로 이동함으로써 장기 집권한 적이 있다. 토니 블레어 시절이었다. 우측으로 이동하는 것이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좌파만 노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김종철이 심상정보다 더 좌파인지 아닌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심상정과 김종철이 페미니즘을 보는 시각이 다른지 같은지도 모른다. 정당내의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글 초미의 가정은 정당 내의 쇼킹한 갈등을 가늠해 볼 목적이었지, 현실성 있는 비유는 아니다. 다만 잠시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측으로 이동하는 변화 말이다.


김종철 새대표가 제시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는 주목할만하다. 김종철은 이슈만을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치인이길 기대한다. 심상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의는 약자, 노동자, 좌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간 어딘가에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의당도 우클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인으로서 영국 노동당의 뒤늦은 반유대주의 징계가 반가웠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그리고 더 일찍 다녀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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