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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06. 2020

숀 코네리와 각국 정보기관의 모토

숀 코네리와 각국 정보기관의 모토(motto)



숀 코네리가 죽었다. 나는 숀 코네리와 관련한 추억이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지 않고 숫자로 다가왔다. 1930년에 태어나 90세를 일기로 2020년에 죽었다. 007만큼이나 간결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영국 언론은 코로나 락다운 발표가 있는 와중에서도 숀 코네리의 죽음을 일면 탑으로 다뤘다. 한국으로 따지면 전국 봉쇄령을 내린 뉴스보다 배우 신성일의 죽음을 일면 탑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각종 조사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세기의 섹시남’에 1등으로 뽑혔다. 그의 죽음이 세간의 관심을 끌만하다.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도 조금 설명이 된다. 남자는 섹시한 남자를 경계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워낙 거리가 있다면 특별히 경계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가장 위대한 스코틀랜드인’ ‘가장 가치있는 스코틀랜드의 살아 있는 보물’로 선정된 적도 있다. 영국 전역에서도 그렇지만,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특히나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자랐다.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 기간 중에 ‘에든버러 골프장에 리조트 건물을 짓는데, 허가를 받지 못해서 고생했다. 그런데 숀 코네리가 도와주어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숀 코네리의 영국 내 영향력과 트럼프의 가져다 붙이기 신공 두 가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007 제임스 본드에 관해서는 누구나 할 말이 많다. 007의 00은 자신의 판단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요원에게 주어지는 코드다. 제임스 본드는 그중에 7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영국의 비밀 정보국(MI6)의 요원이다. 실제로 그런 권한을 가진 요원이 역사상 몇 명 존재했다. 요원의 살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현대 국가에서 형사 책임이란 국가가 묻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묻지 않는다면 죄가 안된다. 다만 영국에는 사소 제도가 있어서 형사 책임을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물을 수 있다. MI6의 00 요원이라고 하더라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MI6는 대외 정보국이기 때문에 영국 내에서 형사 책임을 진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다.


템즈강에 있는 MI6 전경


영국의 정보기관은 MI5가 있고, MI6가 있다. 시초가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6였다. 섹션 5가 국내 정보를, 섹션 6가 해외정보를 다루는 곳이었다. 현재는 국내 정보를 다루는 기관의 정식 명칭은 Security Service며 내무부의 통제를 받는다. 해외 정보를 다루는 기관의 명칭은 Secret Intelligence Service며, 외무부의 통제를 받는다.

이름에 재미난 포인트가 있다. 두 기관은 정식 로고에 기관 명칭을 쓰고 괄호를 달고 (MI5)와 (MI6)라는 표시를 한다. 일상에서는 여전히 MI5와 MI6로 부른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가정보원이 기관 마크를 국가정보원(중정)이라고 표시하는 것이고, 러시아로 따지면 Russia Foreign Intelligence Service가 괄호 치고 (KGB)라고 표시하는 셈이다. 자신들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없다는 자부심이 기관 로고에 깃들여져 있다.



MI6는 어느 나라보다 앞선 정보력을 자랑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 예측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고,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의 당선을 예측했으며, 이러한 예측은 영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었다. 물론 MI6의 정보력 우위가 예전 같지는 않다. 인력으로 7배가 크고 예산으로 4배가 큰 미국의 CIA가 있고, 인력으로 두배가 큰 이스라엘의 Mossad가 있다. 그러나 냉전시기 대소련 정보를 MI6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없었다. 2차 대전 종전협정 시에 루스벨트는 소련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루스벨트를 계승한 트루먼도 마찬가지였다. 007 시리즈에서 CIA 요원이 조직의 규모와 어울리지 않게 쯔끼다시로 출연했던 연유가 있었다.

소련의 KGB와 MI6는 수많은 악연이 있었다. 스파이, 이중 스파이 그리고 삼중 스파이까지. 소련이 망하고 KGB가 해체되면서 러시아는 비밀 정보국의 체계를 새로 세웠다. 영국 체제를 그대로 카피했다. 조직의 이름까지도. 그러나 악연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보기관의 모토를 보면 더욱 재밌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미사여구가 없이 심플하다. MI5는 ‘제국을 지켜라(Defend the Realm)’, MI6는 ‘항상 비밀(Always Secret)’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다. 모토로만 놓고 본다면, 중정의 모토였던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가 더 낫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KGB의 모토는 ‘당에 충성, 조국에 충성’이었다. 세계 최대 정보기관 CIA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을 모토로 하고 있다.

CIA에 필적하는 정보기관인 이스라엘 모사드의 정식 모토는 잠언 11장 14절이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이게 왜 모사드의 모토가 되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훌륭한 지도자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여도 충언자가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그러나 ‘개역 한글 성경’을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뚜렷하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정보기관의 어두운 면은 KGB에서 그리고 중정이나 안기부에서 대부분 끝났다. 아니 끝났기를 바란다. 현대의 정보기관의 역할은 국정원이든, 모사드든, MI6든, CIA든 충언자와 지략가의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조작자나 모략자의 위치가 아니고...

그리고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말을 걸어 봐야겠다. 진짜 숀 코네리 같은 ‘세기의 섹시남’ 비밀요원이 있는지 말이다. 세기의 섹시남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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