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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06. 2020

투자 판단의 기준과 007과 F1이라는 자동차 번호판

런던 라이프

투자 판단의 기준과 007과 F1이라는 자동차 번호판
  
   
바쁘게 한국에 살다가 2007년 카자흐스탄에 와 보니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가 자동차 번호판이었다. 과거에 한국 번호판은 서울 52 0558과 같은 방식이었다. 지금은 52 나 0558 같은 방식이다. 글자가 제한되다 보니 멋지거나 재미난 번호판이 잘 나오지 않는다. 82 가 8282 이런 것이 가장 인상적이기도 하고 한국적이기도 하다. 진짜 미국 대선은 결과가 왜 이렇게 빨리 안 나오는지 답답해 죽겠다.

카자흐인은 유목민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이동수단에 특별한 애착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동차에 과하게 돈을 들인다. 일반 쇼핑몰에도 고급차가 즐비하다. 자동차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자동차 번호에도 비싼 돈을 들인다.

카자흐스탄에서 좋은 번호는 007 KAZ나 007 AAA 같은 것이다. 자동차 번호판을 받으러 가면 번호판을 파는 브로커들이 있다. 어느 한국 사람이 자동차 등록을 하러 갔는데,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좋은 번호판이라고 브러커가 추천한 번호가 888 APA였다는 웃기는 일도 있었다. 번호판에 돈을 쓰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생각을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있었다.



골프장 앞에 서 있는 하얀 밴틀리였는데 차량 번호가 007 BEN이었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길을 가다가 푸른색 BMW였는데, 725 BMW라는 표시를 봤을 때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일설에 의하면 001 TOP이라는 번호도 있는데 와이프는 002 SEC를 탄다는 설도 있다.

영국에서의 번호판은 더 예술이다. 자동차 번호판이 최초로 나올 때는 알파벳 한자리에 숫자 한자리로 나왔다. 그 후로 번호 시스템이 계속 바뀌어서 지금은 알파벳 두자리+숫자 두자리+알파벳 세자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HM07 SON 이런 식이다. 토튼햄의 7번 손흥민을 연상시키는 번호다. 과거 번호가 모두 다 살아 있고, 새로 발급되는 번호도 일반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화된 번호의 형성이 가능하기에 다양한 조합을 거리에서 만난다.



A1이라는 번호판은 1903년에 런던의 최고 명문가인 러셀 백작에게 주어졌는데, 지금은 브루나이 국왕의 동생에게 넘어가 있다. 그의 여동생은 1A라는 번호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비싼 번호판은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에 부착된 F1이라는 번호일 것이라 추정한다. 2014년에 90억 원에(차는 빼고 번호만)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번호판 주인은 150억 원을 주면 팔겠다고 했다고. F1 번호의 주인은 2006년에 7억 원에 번호를 매입했으니 세상에 이런 장사가 어디 있는가?

번호판 시장이 커지자 영국의 자동차 면허 기관인 DLVA은 1989년부터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서 번호판을 경매로 팔기 시작했다. 그 후로 번호판을 팔아서 번 돈이 누적으로 3조 원을 돌파했다.


영국의 번호판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알파벳 I, O, Q, Z는 혼동이 일어 날 수 있는 위치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I는 특히 쓰이지 않는다. L과 혼동할 수도 있고, 숫자 1과도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호판에 있는 I라는 것은 영어 i의 대문자가 아니고 숫자 1이다. 다만 숫자 1을 I로 표시해 줌으로써 번호판의 묘미가 한층 더 생겼다.


1은 i를 의미할 수 있고, 4는 A를 의미할 수 있다. 때로는 5가 S를 의미하게 된다. 숫자 0, 1, 4, 5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재미난 번호판을 만들어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고, 나중에는 비싼 가격에 팔 수도 있다. 처음에는 모르고 발행되었지만 너무 혐오감을 들어내는 번호로 판정이 되면 DLVA가 번호를 취소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면서 재치 있는 번호 중에는 PEN 15가 있다. PEN I5로 표기된다. 그리고 G 5POT도 꽤나 눈에 띄는 작명이다.



모르는 세상도 많고, 머리만 쓰면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많다. 그렇지만 번호판 하나에 150억 원을 달라는 것도 세상이 too much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 돈은 많고 번호는 하나니까, How much is too much?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여러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르고 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투자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희소성이다. 이게 정말 희소한 것인가? 위기일수록 돈은 많이 풀리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것은 변하지 않고 하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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