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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15. 2020

권력자는 퇴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런던 라이프

권력자는 퇴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영국 정치인이 퇴장하는 모습은 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의원 내각제 국가에서 총리 임기는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다. 선거에서 이기면 다수당의 대표가 계속 총리를 하며, 지면 반대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당일에 총리는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다. 총리 집무실이자 거주지인 다우닝가 10번지를 가족과 함께 나오는 데는 단 하루의 시간도 온전히 주어지지 않는다. 당내 반대 세력이 늘어나면 총선 일정과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윈스턴 처칠은 포츠담에서 종전 협상을 하다말고 중간에 모든 업무에서 내려왔다. 개표 집계가 지연되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야구로 따지면 볼 카운트 중간에 타자가 교체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스탈린과 회담하다가 중간에 교체되는 것은 어쩌면 투수가 공을 던지고 포수 미트로 공이 날라가는 중간에 타자를 교체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황당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업무를 내려놓는 방식, 쥐었던 권한을 포기하는 방식의 갑작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아무리 오랫동안 총리를 해도 하시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 날 수 있다.



총리, 장관, 고위직 정치인의 소탈한 모습도 마음에 든다. 총리가 직접 큰 서류철을 들고 다닌다. 총리도 그러할진대 장관은 당연하다. 다우닝 10번지를 드나드는 장관이 웨이트로스 슈퍼마켓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서 들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쇼핑 봉지가 늘어진 각도로 보았을 때 점심 도시락이거나 집에서 만들어 온 음료수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한때 보리스 존슨 총리를 뒤에서 좌지우지한다고 하여 한국의 최순실에 비교되기도 했던 도미니크 커밍스 수석 보좌관이 권력에서 밀려나서 짐을 싸서 나가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종이 박스와 비닐봉지를 들고 나오는 장면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아름다웠다. 권력이란 저런 것이다. 산 교육이다.



보리스 존슨이 누구의 허수아비라고 가정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보리스 존슨은 이튼스쿨과 옥스퍼드 재학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모든 분야에서 선두에 있었고, 리더십이 강했다. 기자 시절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했고,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각의 글을 쓰는 것을 선호했다. 상투적이기를 거부했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관철하기를 좋아했다. 총리로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것이나 어느 한 사람에게서 절대적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남녀 관계는 모르는 것이어서 애인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그 둘만이 알 일이다.



하여간에 권력 실세 중에 하나였으며 브렉시트를 주도한 경력때문에 반대 세력의 미움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도미니크 커밍스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차림으로 다우닝 10번지를 나오는 장면은 보기에 좋았다. 브렉시트 반대자들에게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주었다. 쾌감을 느낄 것까지는 없는 내게는 정치인이 물러나는 소탈한 방식이 맘에 들었다.


나의 임기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다 것이 우리 법체계에서 있을  있는 일이지만, 그게 생각만큼 선한일인지는 모르겠다. 헌법과 법률은 권력자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언제라도 자신의 손을 떠날 수 있다. 권력자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망조가 들기 시작한다. 선거에서 졌다면, 임명권자의 신임을 잃었다면, 그리고 국민의 미움을 산다면, 주저 없이 물러나는 것이 공무를 담임하는 자의 도덕이다. 신임을 잃었다, 미움을 산다는 것이 그렇게 자명한 것은 아닐 때도 있지만 말이다. 선거에서 진 것도 자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아! 강력한 브렉시터였던 도미니크 커밍스의 사임이 브렉시트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는 코로나 와중에도 궤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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