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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Nov 13. 2020

전태일, 올리버 트위스트 그리고 노동시간

런던 라이프

전태일, 올리버 트위스트 그리고 노동시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0년이 된다. 우리 시대는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누구는 분노를 느꼈고 누구는 무력함을 느꼈다. 나는 무력함을 느낀 사람 중의 하나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한 사람 중에 다수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했다. 그만큼 전태일이 우리 세대에 미친 영향이 크다.


전태일 평전을 읽을 무렵,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도 읽었다. 디킨스 고유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해피엔딩 속에 가려져 있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어린이 노동에 대한 처참한 실태가 나온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1838년에 출판되었을 당시, 어린이 노동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1833년 조사에 따르면, 섬유산업 노동자 중에 10세 이하가 4.5%, 13세 이하가 15%, 19세 이하가 54.5%에 달했다. 어린이 노동자가 섬유산업에 특히 많았던 이유는 기계화로 인해 공정이 단순화되었고, 그 공정에서 아이들의 섬세한 손이 어른 손보다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 노동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공급 측면에서는 가난하고 돈이 필요했기에 노동 시장에 어린아이가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더라도 19세기 초반에 어린이들이 할 일이 별로 없었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이 노동 공급이 많았다. 어린이 노동은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1876년 의무 교육이 시작되면서 큰 폭으로 줄었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어린이 노동에 관한 법률의 변화다. 법률이라는 것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법률 사각지대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사회상과 사회의 변화를 살피는 데는 법률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국의 노동 관련 법률을 보자. 1847년에 10시간 이상 노동 금지였던 조항이 3년 후인 1850년에는 10시간 30분 이상 금지로 30분이 늘어났다. 이를 통해 영국의 노동시간 제한 조치가 그냥 법률상의 조항이 아니라 꽤나 강제력이 있었던 조항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고용주는 어떻게든 노동 가능 시간을 30분을 더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 1819년: 아이들 하루에 12시간 이상 노동 금지
-. 1833년: 9세 이하 아이 섬유 산업 노동 금지, 10-13세 아이들 일주일에 48시간 이상 노동 금지
-. 1844년: 여자들 하루에 12시간 이상 노동 금지
-. 1847년: 아이들, 여자들 하루에 10시간 이상 노동 금지
-. 1850년: 아이들, 여자들 하루에 10시간 30분 이상 노동 금지. 대신 아침 6시 이전, 저녁 6시 이후 노동 금지
-. 1874년: 모든 노동자 일주일에 56.5시간 이상 노동 금지
 


분신 당시 전태일 열사는 걸어서 퇴근하고, 집에서 밥 먹고, 눈을 잠시 붙이고, 다시 걸어서 출근했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16시간 이상은 일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법률은 하루 8시간 이상 노동 금지였다. 전태일은 그 조항을 알고 환호했지만, 환호는 곧 좌절로 바뀌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도와줄 대학생 친구가 필요했다. 그의 이야기는 많은 대학생을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만들었다. 노회찬, 심상정 같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우리 동년배로는 정의당의 김종철 대표가 그랬을 것이다. 전태일과 그를 따른 노동자 및 노동운동가 덕분에 우리나라의 노동 조건은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발전했다.

영국은 현재 주 48시간 근무다. 일시적으로 48시간을 넘는 근무가 가능하지만 17주 평균으로 주당 48시간을 넘을 수 없다. 17주인 것은 계절적인 것과 산업적 특성을 모두 감안한 것이다. 18세 이하의 경우는 17주 평균이 적용되지 않으며, 하루에 8시간을 넘을 수 없고, 일주일에 40시간을 넘을 수 없다.

한국이 선진 산업국가가 되었고, 노동조건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우리나라 노동자는 여전히 고단하다. 노동시간으로 OECD 국가 중에 두번째로 길다. OECD 평균보다 일 년 기준으로 35일을 더 일한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영국 사람은 한국 사람의 절반도 일을 안 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노동 생산성은 선진 36개국 중에 29위에 해당한다. 체감하기를 노동 생산성 29위는 믿을 수가 없다.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일하는 창구 직원을 보면, 한국이 전 세계 1등으로 보인다. 한국 은행 데스크 직원의 업무 스피드는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포함될 정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은 유럽의 여러 나라 대비해서 두배는 더 일하고, 단위 시간당 생산성도 두배는 높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이유가 있고, 앞으로도 더 잘 살 이유가 그래서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하는 시간만큼, 일을 잘하는 정도만큼 잘 살지는 못한다. 4배는 더 잘 살아야 하는 데, 우리가 유럽의 주요 국가보다 4배 더 잘 살진 못한다. 생산성이라는 것이 은행 업무나 우체국 업무로만 평가될 수는 없으니까 4배라는 수치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유럽 나라보다 몇 배 잘 살지는 못하고 비슷하거나 조금 못 사는 수준이다.



전태일의 죽음 50주기를 맞아 우리의 노동 시간, 노동 생산성 등에 관해 포괄적인 조사와 연구가 지금보다 더 심도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한정된 데이터를 가지고 하루에 8시간이 적당하냐, 일주일에 52시간이 적당하냐를 따지는 것은 공허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1970년 당시의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법률이 현실적이었느냐 아니었냐를 따지는 것은 그 취지는 이해하나 여전히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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