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브렉시트와 EU 여성 리더의 새로운 발견
뉴스의 보도와는 달리 영국은 잘 있습니다. 사재기로 매대가 비었다는 뉴스와는 달리 물건은 흘러넘칩니다. 온라인 배달은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그렇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24일 오전에는 선물처럼 우리 집 앞에 식료품을 배달하고 갔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거리는 활력이 넘칩니다. 어제 저녁은 리전트 스트리트(Regent Street)에 나가 보았는데, 찬란한 아름다움은 그대로였습니다.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몇몇 국가에서 영국에서 오는 비행기를 막았고, 프랑스가 일시적으로 국경을 차단하여 대형 트럭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 도버에서 장사진을 쳤습니다. 하루에 8천 개의 대형 트럭이 도버해협을 건넌다고 합니다.
변이 바이러스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다만 변이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영국의 연구팀에 의해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변이 바이러스는 최근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지난 9월부터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발 비행기를 차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유럽 몇몇 나라에서 실행되었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라면서 차단 조치를 해제할 것을 회원국에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24일에는 영국과 EU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모든 상품이 브렉시트의 실행과 더불어 브렉시트 이전과 동일하게 무관세, 무쿼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렉시트는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지 상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로서 명확해졌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발표하는 보리스 존슨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소식을 전하는 각종 뉴스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칭찬 일색입니다. 주목할 장면은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술라 폰 데어 레이언(Ursula von der Leyen, 이하 VDL)의 발표였습니다. 기존의 EU 관료와 달리 VDL는 상대방인 영국을 자극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시종일관 보여주었습니다.
협정 타결을 발표하는 와중에 그녀는 비틀스와 셰익스피어를 인용했고, 특히 T.S. 엘리엇의 시인 Little Gidding의 구절을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종 끝이며, 끝낸다는 것은 곧 시작한다는 것이다.(what we call beginning is often the end, and to make an end is to make a beginning.)’
영국 언론으로부터 ‘우아한’ ‘고귀한’ ‘품위 있는’이라는 칭찬을 받은 VDL은 누구인가요? EU 고위직 중에 영국 언론으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받은 인물은 전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브뤼셀에서 태어나고 자란 독일인으로 브뤼셀에서 유로피언 스쿨을 다녔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그 학교를 다녔습니다. 보리스 존슨보다 6살이 많아서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영국의 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시절 도서관에는 가지 않고 캠든(Camden)의 레코드 가게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는 아마도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을 것 같군요. 독일로 돌아가 의학을 공부하여 여성병과 전염병을 연구하는 의사가 되었고, 자녀 7명을 낳았으며, 남편을 따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4년을 살다 오기도 했습니다.
독일로 돌아와 정치에 입문했고, 여성가족부 장관, 노동부 장관을 거쳐 국방부 장관을 지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7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의사를 했고,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원더우먼이 따로 없습니다.
엄중한 시기에 EU 집행위원장을 수행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전염병 전문가이자 영국 전문가인 EU 집행위원장의 말을 EU 회원국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변이 바이러스는 유럽 어디에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