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자전거로 달려 보는 런던의 거리
처음 런던에 왔을 때, 런던 라이프의 절반은 자전거 라이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올여름에서야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줬다. 둘째와 셋째는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를 자전거로 간다. 런던 아이들 상당수는 유치원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그렇게 성장한 런던너는 대부분 자전거 선수들이다.
와이프는 브롬튼(Brompton)을 가지고 싶었는데, 올해에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이로서 나만 자전거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와이프 자전거인 브롬튼은 도시형 자전거를 표방하고 있다. 때문에 런던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빨리 찍는 것이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예의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둘째와 함께 타워 브릿지에 가보기로 했다. 둘째가 가지고 있는 자전거인 Ridgeback은 동명의 개처럼 날렵하고 아름다운 자전거다.
우리 집에서 타워 브릿지까지는 직선으로 8km, 도로를 따라서 11km며, 구글 지도에 따르면 자전거로 35분 걸린다. 첫 시내 주행이고 길을 잘 몰라서 한 시간이나 걸렸다. 생각처럼 위험하지는 않았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는 곳은 전체 주행 구간의 1/10 정도였다. 1/2 정도에는 버스 전용 구간이 있었고, 자전거는 버스 전용 구간을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뒤에서 버스가 나타났지만 버스는 기다려 주거나 다른 차선을 이용해서 자전거를 보호해 주었다.
자전거와 버스 구간이 없는 도로라고 해도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다. 런던의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기에 과속하는 차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내심이 없는 차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자전거를 존중해 주었고, 우리처럼 미숙한 사이클리스트를 잘 보호해 주었다.
버로우 마켓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마켓 내 상점은 모두 열렸고, 장사는 꽤나 잘 되고 있었다. 시내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사람들은 맑고 건강한 모습으로 세모를 즐기고 있었다.
긴 줄로 유명한 버로우 마켓에 있는 음식점 파델라(Padella)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코로나 상황이 갑자기 실감 났다. 좋은 음식점을 모두 지나치고, 우리는 타워 브릿지에 도착했다. 강바람을 맞으니 한기가 들었다. 파이브 가이스의 붉은색을 보니 고프지 않던 배가 허기를 전했다.
안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따뜻한 공간을 텅 비워놓고, 차가운 공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곳곳에서 깔깔깔 소리가 들렸다.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유난히 맛있었다.
바로 옆에서 흑인 가족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런던에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가 많다는데 무섭지 않나요?’ ‘변이라고 해도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새삼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요?’ 그렇다. 런던은 뭐 새삼 두려울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확진자가 증가하니 정부는 어려움에 빠진다. 수치상의 확진자 증가와 체감상의 두려움 감소 사이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의 고뇌는 깊을 것이다.
타워 브릿지를 배경으로 산타 할아버지에 헌정하는 사진을 찍었다. 사이클 복과 사이클 헬멧이 없어, 스키복과 스키 헬멧을 썼다. 타워 브릿지를 두세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시내는 확실히 브롬튼이 많았다.
오후 네시가 가까워지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기어를 올리고 바삐 집으로 향했다. 어두움이 내리자 자신감은 떨어졌고, 길이 낯설게 보여서 시간이 더 걸렸다. 한 시간 십 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자전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시형 자전거 말고 도로를 고속 질주할 수 있는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다. 좋은 자전거를 검색하는데, Ribble Endurance가 왠지 가장 끌린다. 사이클 마니아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저걸 부담 없이 사기 위해서는 그때 주식을 팔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올해는 이래 저래 후회가 많이 되는 한 해다.
삼천리 자전거나 대영 자전거를 탔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린이 자전거가 없어 어른 자전거를 안장 밑으로 다리를 넣어 비스듬하게 타던 때가 있었다. 과연 좋은 자전거는 내게 필요한가? 필요하다. 필요해! 런던 라이프는 절반이 자전거 라이프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