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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26. 2021

문학으로부터의 보호

문학으로부터의 보호
  
  
우리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흥부전에서부터 백설공주까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해줬다. 소재가 고갈되었을 때는 안데르센 동화집을 사서 읽고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안데르센 동화는 생각과는 달리 잔인한 요소도 많고, 이야기 구성도 엉성하다고 느꼈지만, 잠자리에서 아이들은 모두 안데르센 동화를 좋아했다.

가끔은 창작 이야기를 풀어낸 적도 있지만, 4살만 돼도 창작은 잘 안 통했다. 창작 이야기에는 ‘그게 뭐야!’라며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고얀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 잘못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은 어느 이야기가 안데르센이고, 어느 이야기가 아빠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도 같은 경우였다. 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던 머퓨고는 셰익스피어를 특히 좋아했다. 자식들 이름도 모두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따왔다. 학교에서 마냥 셰익스피어 이야기만 해 줄 수도 없고, 이런저런 작품을 읽어 주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때가 많았다. 한탄을 하자, 아내가 ‘그럼 당신이 직접 써서 이야기를 들려줘요!’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46년 동안 한 해에 두세 권의 소설을 썼다. 지금까지 120권의 소설을 썼다. 분량도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잘 알려진 워 홀스(War Horse)가 196페이지나 된다. 대단한 창작력이다. 마이클 모퍼고는 영국 아동 문학을 반세기 가량 이끌고 있는데, 공을 인정받아 작위를 받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 세대, 아들 세대에 이어 손주 세대까지 삼대에 걸친 아동문학가가 될 것이다.

모퍼고가 영국 아동문학 시장의 수준을 높여 놓았기에 그 토대 위에 J.K 롤링 같은 다음 세대가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다. 77세인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셰익스피어를 다시 쓰는 것이다. 8세에서 16세 사이의 어린이가 쉽게 셰익스피어를 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의 작품은 많은 영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될 것이다.

그런데 모퍼고가 다시 쓰는 셰익스피어에는 ‘베니스의 상인’이 빠져 있다. 그 책에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영국 참교육 교사 모임은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아이들은 위대한 문학으로부터 보호받아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나 코란으로부터 아이들이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위대한 문학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퍼고는 이러한 비난에 부담을 느꼈다. 본인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을 검열할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 내가 좋아하는 10개의 작품을 다시 쓰려고 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에는 제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그것을 내가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퍼고는 이전에 베니스의 상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그곳에 나타나는 반유대주의가 불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검열한다는 세간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종차별에 엄격한 영국 사회에 그를 두둔하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나는 모퍼고가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쓰기를 바란다. 반유대주의가 있으면 있는 대로 다시 쓰면 좋겠다. 그 모든 것이 큰 교육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니스의 상인’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Therefore Jew, although justice is your aim, think about this: none of us would be saved if we depended on justice alone.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정의가 당신의 목표라고 말하지만, 이를 명심하시오. 우리가 정의에만 의존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오.

‘정의만을 주장해서는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이런 명 문장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이 보호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문장은 우리 시대에도 별처럼 빛난다. 그리고 만연해 있는 정의 콤플렉스에서 우리도 좀 벗어났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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