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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23. 2021

 신사의 클럽, Club 2.0, 클럽하우스

London Life

London Life 2.0

(3) 신사의 클럽, Club 2.0,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에서 총리를 만나다

며칠 전 클럽하우스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났다. 세 개의 질문을 했다. ‘국회의장을 역임한 분이 국무총리를 한다고 야당에서 비난한 적도 있습니다. 해보시니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중에 어느 자리가 더 가오가 서나요?’ 장점과 단점, 어려운 점과 보람 있는 점이 각기 다르다는 취지의 답변이 있었으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국회의장 공관과 국무총리 공관 중에 어느 것이 큰가요?’ ‘국회의장 공관이 조금 더 큽니다. 그렇지만 국무총리 공관에는 900년 된 등나무도 있어서 멋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공관이 너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예의상 참았다. 마지막 질문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중에 누구 월급이 더 많습니까?’였다. ‘국회의장이 조금 더 많습니다.’

이어서 젊은이들의 진지한 질문이 이어졌다. 청년실업 문제, 주택 정책, 코로나 대응책 등에 대한 질문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대정부 질문보다 수준이 높았고, 총리는 진솔하게 답했다. 총리의 답변에 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총리와 참여자들은 서로 맞팔을 하며 클럽하우스를 마무리했다.

클럽하우스 방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유명인사가 주도하는 방, 강의식으로 진행되는 방, 뚜렷한 주제가 있는 방, 제목조차 없는 방, 반말로 진행되는 방, 침묵의 맞팔 방 등등. 정보와 공감이 있다. 생각보다 좋은 방은 10-20명 내외가 아무 주제 없이 대화하는 방이다. 젊은 세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깨닫는 게 많다. 지식이나 경험을 듣는 것도 좋고, 생각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도 유용하다.
  
  
Club 1.0: Gentlemen’s Club

클럽하우스의 시초는 17세기 말 영국 귀족 사회에서 시작된 ‘신사들의 클럽(gentlemen’s club)’이다. 귀족 남성들에게 클럽은 제2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운동하고, 게임을 즐겼다. 모든 것을 해야 했으므로 저택 기능이 필요했고, 그래서 하우스(house)라는 단어가 필요했다. 귀족에게는 어차피 큰 집이 있었는데, 왜 클럽하우스가 따로 필요했을까? 귀족의 저택은 어느 정도 공적인 공간이었다. 행사와 파티가 진행되면서 자주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가족만의 공간이 있다고 해도 그 공간은 안주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자신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남자들이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

클럽의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하나의 클럽이 많은 회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런던의 웨스트엔드(West End) 지역에 여러 가지 형태의 클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클럽은 엘리트 남성들의 삶의 중심이었다. 이곳에서 정치 제도, 해외 무역, 식민지 경영, 투자, 스포츠, 도박, 문화 예술, 문학 등이 논의되고, 만들어지고, 발전했다.
  


  
최초의 클럽하우스 White’s에 가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적갈색 빛의 대로를 따라가다가 버킹검 궁전을 한 블록 앞에 두고 우회전하면 세인트 제임스 스트리트(St James’s Street)가 나온다. 그곳 37번지와 38번지에 세계 최초의 클럽하우스인 화이츠(White’s)가 있다. 건물은 제법 큰데, 건물 외관에는 어떠한 말도 쓰여 있지 않으며, 검은 문에 사자머리 문고리만 덜그렁하다. 락다운이라 그런지, 낯에는 항상 그런지 건물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유리창 넘어 비치는 커튼의 형태로 봤을 때 인테리어가 화려할 것 같지는 않았다.

36번지 건물에는 베레타(Beretta) 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는 시가(Cigar)를 파는 다비도프(Davidoff)가 있다. 맞은편에는 금괴와 금화를 보관해 주는 업체인 샤프스 픽슬리(Sharps Fixley)가 있는데, 코로나 락다운 와중에도 환하게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금괴와 금화 보관은 은행업 비슷한 것이어서 필수적인 업종으로 분류되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비트코인도 보관되나요?’라고 묻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데, 사이클복 행색이 맘에 걸려 하지 못했다.

화이츠 클럽은 1693년에 메이페어(Mayfair)에서 시작한 후에 177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사했다. 1783년부터는 토리(Tory) 당의 비공식적 헤드쿼터 역할을 했다. 휘그당(Whig)은 부룩스(Brooks’s) 클럽을 중심으로 모였다. 현재 화이츠 클럽에는 찰스 왕자와 윌리엄 왕세손을 포함하여 40명의 클럽 회원이 있다.

전임 총리였던 데이비드 카메룬도 화이츠 클럽 회원이었는데, 총리가 되기 전인 2008년에 탈퇴했다. 클럽 회원으로 여성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묵살되면서 항의의 뜻으로 클럽을 떠났다. 여성은 클럽 회원이 될 수 없고, 손님으로 가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다. 들어와도 식탁 테이블에 앉을 수가 없다. 화이츠에 여성이 들어와 식탁에 앉은 사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두 차례(1991, 2016) 방문뿐이었다.
  


Club 2.0: 다양한 클럽의 번성

전통적인 젠틀맨스 클럽이 아직도 70여 개가 있고, 이를 본뜬 클럽의 수는 다양하여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비밀 결사 조직도 있고, 퇴폐적인 클럽도 있다. 사교 클럽 이외에도 취미를 같이 하는 클럽이 많다. 영국에 축구 클럽만 4만 개가 있으며, 15만 개가 넘는 스포츠 클럽이 있다.

젠틀맨의 사적 공간이었던 클럽은 이제 영국 시민 사회의 풀뿌리가 되었다. 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지 않는 영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클럽은 중요한 사회 안전망의 하나로 기능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서로 돕고 격려하는 핵심 조직 중의 하나가 클럽이다. 클럽이 어느 정도의 구제 역할이나 정신 건강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면, 클럽이 촘촘하게 존재하는 사회의 국가 역할과 그렇지 못한 사회의 국가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Club 3.0: 클럽하우스의 등장

인터넷 세상에 새로운 클럽이 등장했다. 이름하여 클럽하우스다. 클럽 1.0은 엘리트 남성만의 폐쇄적인 휴식 및 사교 공간이었다. 클럽 2.0은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의 장이다. 클럽 3.0인 클럽하우스가 인터넷에 등장하면서 클럽 1.0의 폐쇄성과, 클럽 2.0의 지역적 한계가 극복되었다. 3.0은 1.0과 2.0을 모두 담으면서 더 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그 발전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오늘은 클럽 3.0인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는 대신에 자전거를 타고 최초의 클럽하우스인 화이츠에 가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았고 건물 사진을 찍었다. 건물 안에서 있었을 많은 이야기의 메아리는 지금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궁금했다. 새로운 시대의 클럽하우스는 어떤 메아리를 남길까?

국회의장을 지낸 국무총리는 만났으니 다음에는 클럽하우스에서 대법원장을 만나보고 싶다. ‘가오 빠지게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다. 대법원장 공관에는 등나무가 있는지, 9억을 들여 수리했다는 공관은 잘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클럽 1.0인 젠틀멘스 클럽에는 가본 적이 있는지, 어떤 클럽 2.0 활동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는 과연 Club 3.0인 Clubhouse를 하게 될까?

새로운 소통을 원했던 국무총리는 예고 없이 클럽하우스에 들어왔다. 다음에는 누구를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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